[미디어펜=김견희 기자]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9명의 사망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참사' 발생 1년이 다가오지만,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9일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4만2369건으로, 2020년(3만1072건) 대비 36.4% 급증했다. 전체 교통사고는 같은 기간 20만9654건에서 19만6349건으로 줄었으나, 고령 운전자 사고의 비중은 14.8%에서 21.6%로 크게 뛰었다. 이는 2005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다.
사고 원인은 대체로 노화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가 꼽힌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어린이가 튀어나올 경우 고령 운전자의 브레이크 반응속도는 평균 2.28초로, 비고령자의 1.20초보다 약 두 배 느렸다. 시야각도 일반인의 절반 수준이다.
고령층이 자주 겪는 페달 오조작 사고도 문제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9∼2024년 사이 발생한 페달 오조작 사고를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이 낸 사고 비율은 25.7%였다. 지난해 발생한 은평구 연서시장 사고, 강북구 햄버거 가게 돌진 사고 등도 모두 고령 운전자의 오조작으로 발생했다.
시청역 사고를 계기로 고령 운전자의 조건부 면허 제도나 면허 자진 반납이 해법으로 제시됐지만, 실효성은 미미하다. 야간운전이나 고속도로 진입을 제한하는 조건부 운전면허는 아직 도입 전이며, 자진 반납은 참여율이 저조하다. 서울시의 경우 연간 20만∼50만 원의 보상을 지급하고 있지만, 반납률은 3%대에 불과하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거나 생계형 운전자인 경우 반납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도입 역시 더디다. 해당 장치는 차량 센서와 카메라로 장애물을 인식해 급가속을 방지하는 장치로, 경찰청과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오는 8월에야 고령 운전자 800명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사망 사고의 27.6%가 페달 오조작으로 나타나자, 오는 2028년 9월부터 판매되는 모든 승용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일본에서 생산되는 승용차의 90% 이상에 이 장치가 탑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만큼 고령 운전자 사고가 폭증할 수 있다"며 "조건부 면허제, 오조작 방지 장치 등 다양한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