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과 맞물린 중국 휴머노이드 굴기
커피를 내리고, 공장에선 문짝도 번쩍 들어 옮긴다. 24시간 순찰, 안전 점검도 그들 몫이다. 중국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앞당긴 기술의 토대엔 인공지능(AI)이 있다. 2017년 AI 강국 목표를 내건지 9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총동원해 로봇의 ‘뇌’인 AI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년후엔 AI가 전깃불처럼 당연하게 만들겠다는 중국. 본지는 AI 혁신의 본거지인 베이징과 휴머노이드의 최전선인 선전에서 ‘먼저 온 미래’를 찾았다.

격투기 자세를 취하던 휴머노이드 로봇 PM01는 원투 펀치와 어퍼컷, 높이차기와 돌려차기를 현란하게 이어갔다. 넘어지지 않았다. 미세하게 떨며 균형을 잡아냈고, 무릎을 굽혀 구사한 구르기도 자연스러웠다. 기자가 직접 등에 달린 손잡이를 억세게 끌어당기자 로봇은 뒷걸음치며 균형을 잡아냈다. 가격은 18만8000위안(약 3900만원). 시판 중인 이 모델은 오픈소스 기반의 인공지능(AI)으로 작동된다. 로봇 개발자들은 로봇에 새로운 동작을 추가해 2차, 3차 혁신이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19일 방문한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 난산(南山)구의 선전만 혁신과학기술센터. 휴머노이드 기업 엔진AI는 세계 최초로 로봇 공중제비 돌기에 성공한 PM01의 고난도 몸동작을 선보이고 있었다. 관계자는 “피지컬 인공지능(AI) 덕분에 로봇 스스로 안 넘어지고 균형을 잡는다”고 설명했다.
시연실 한 쪽에는 자신을 만들어준 창업자 자오퉁양(趙同陽) CEO를 발로 차 넘어뜨려 ‘터미네이터’ 별명이 붙은 로봇 T800이 서 있었다. 벽면 스크린에는 자오 대표와 T800이 지난해 12월 출시된 직후 격투하는 장면이 흘러 나왔다. 키 173㎝, 무게 75㎏, 자체 개발한 29개의 관절 모듈을 탑재한 T800은 힘이 최대 450N·m(뉴턴미터) 토크다. 자동차에서 휠 너트를 조일 때 드는 힘의 3~4배 수준이다.

이 모든 게 엔진AI가 창업(2023년 10월)한지 2년만에 거둔 성과다. 엔진 AI는 지난해 11월 11일 선전시 고급 쇼핑몰 어퍼힐스에 세계 최초로 자체 플래그십 매장도 열었다. 현지 직원은 “학생·연구자 등 로봇 애호가 위주로 구매 문의가 이어진다”며 “개장 한 달 만에 선전의 명소가 됐다”고 자랑했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은 실험실에서 나와 인간의 일상으로,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 선전시 경찰은 2025년 2월 PM01 로봇을 시범 배치해 순찰 및 공공 안전 업무를 돕게 했다. PM01은 중국어와 광둥어 음성명령을 인식하고, 미아 찾기, 관광객 길안내, 위험 상황 감지 등 임무를 해내고 본부에 실시간 상황을 전달했다. 현지 매체에선 “로보캅의 시대가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선전의 일부 가전 매장에선 PM01이 고객을 맞이해 상품 위치를 알려주는 직원 역할을 한다. 엔진 AI는 2026년 PM01을 가사지원 및 노인과 어린이 돌봄까지 할 수 있는 로봇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19일 선전 남방과기대 캠퍼스와 붙어 있는 산업용 로봇기업 유비테크를 찾았다. 스스로 로봇이 배터리를 교체해서 유명해진 휴머노이드 워커(Walker) S1의 시연이 인상적이었다.
탁자에 놓인 사과, 테니스공, 귤, 퍼즐 중에 사과를 고르라고 로봇에게 지시한 직원이 갑자기 사과를 퍼즐 위로 옮겼다. 워커S1은 뻗었던 팔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 뒤 정확히 사과를 집었다. “명령 후에 물체 위치를 갑자기 옮겨도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 AI의 대형언어모델(LLM) 덕분이다”라는 소개가 뒤따랐다. AI 기술이 로봇을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장면이었다.
유비테크의 산업용 휴머노이드는 전기차 업체 BYD, 지커, 폭스콘 등의 공장에 투입돼 가동 중이다. 최근엔 미국 반도체 회사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말레이시아 공장에 워커S1 500대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친샤오쥔(秦曉軍) 유비테크 해외마케팅 팀장은 “유비테크는 지난해 6월말 기준 휴머노이드 유효특허수(2790건) 세계 1위”라며 “여러 자동차 기업과 협력하는 유일한 로봇회사”라고 소개했다.
친 팀장은 “1단계로 지난 2023~2024년 전기차 제조 현장에서 자재 운반, 재료 분류, 품질 검사 훈련을 했다”며 “2단계(2025~2027)에는 가전제품 제조 등 상용화 범위를 넓힐 것”이라 소개했다. 그는 “3단계(2028~2030)에는 지능형 로봇을 가정에 보급해 인류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든다는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AI 혁신 본고장 베이징…비영리 AI 연구기관 주도
중국 휴머노이드 굴기는 AI 기술과 맞물려 있다. 휴머노이드 기업들은 중국판 챗 GPT 딥시크 등 AI 모델을 로봇의 '뇌'에 이식했다. 그 덕에 로봇은 실시간으로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정확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린다.
지난해 중국 중앙방송(CC-TV)에 따르면 생성형 AI가 적용된 일부 로봇은 수 개월 훈련 과정을 10여분으로 단축했다. CCTV는 “극도로 정밀한 작업도 자율적으로 해낸다”며 “로봇이 단순·반복 작업에서 자율·진화 단계로 진입했다”고 전했다.
공장 라인에서 휴머노이드끼리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동료처럼 협업해 과제를 완수한 성공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거대한 AI 실험실이 된 덕이다. 샤오미 등의 다크 팩토리(AI와 로봇으로 운영되는 무인공장)에선 AI가 24시간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로봇에 전달하고, 로봇은 이를 토대로 제품 생산부터 포장·검수까지 혼자 해낸다. 작업 중 로봇의 실수도 있지만, 그 경험마저 AI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이터로 쌓인다.
앞서 달리는 중국의 휴머노이드, 그 두뇌에 해당하는 AI의 혁신이 이뤄지는 곳은 주요 도시마다 설치된 178곳의 고신구(高新區·첨단기술산업개발구)다. 국가가 첨단기술 육성을 위해 조성한 곳으로 입주 기관·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는 단지다. 중국판 실리콘밸리인 중관춘(中關村)이 1988년 중국 최초로 지정된 고신구였다. 그런데 이 고신구들이 최근 "국가가 설계한 인공지능(AI) 혁신 실험장"(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조교수)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신구에선 제조·물류·금융·의료 등 AI의 밑거름이 되는 데이터가 생산된다. 로봇 자동화, 최적화 등 AI 솔루션 테스트도 여기서 이뤄진다. 로봇·자율 주행 등 규제가 필요한 기술도 고신구가 먼저 시범적으로 도입해 실험한다.
그 중에서도 2018년 베이징 고신구 내에 설립된 즈위안(智源) 인공지능연구원(BAAI)은 AI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다. 현재까지 BAAI가 오픈소스로 공개한 200개 이상의 AI 모델이 기초 과학(생물학, 물리학 등)에 활용됐다. 2021년 BAAI가 발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우다오 2.0'은 당시 오픈AI의 챗GPT-3보다 10배 많은 매개변수를 적용해 중국 AI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 지난해 공개된 로봇 AI 모델 '로보브레인 2.0'도 BAAI 작품이다. 이 모델이 적용된 로봇은 사물과 공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일 수 있어 산업 자동화, 물류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중국 AI 연구 기관들은 정부 주도 하에 기업들에 AI 모델을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AI 서비스를 유료로 쓰는 다른 국가들과는 대조적"이라고 짚었다. 남 조교수는 "BAAI는 개방성이 높고, 청년 연구자 중심으로 일한다"고 짚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BAAI가 자신들이 개발한 각종 AI 모델과 코드를 전세계에 오픈소스로 공개해 현재까지 수억회 다운로드가 됐다는 점이다. BAAI는 글로벌 조직인 IEEE(전기전자공학자협회) 등과 협업해 표준 프로젝트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 중이다. 글로벌 표준을 향한 포석이다. 그는 “BAAI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도 미국 엔비디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과거에 나온 엔비디아칩을 보유하고 있어 연구에 아직도 활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중국 정부는 AI 혁신 총력전을 펴고 있다. 2030년엔 AI를 전기와 인터넷처럼 보편화하고, 2035년까지 AI가 문화와 인간 상호작용을 재편하는 '지능형 사회'로 만든다는게 중국 정부가 내놓은 청사진이다.
멀티모달(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 처리), 군집지능(장치·로봇 등이 자율적으로 협력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적 행동시스템) 등 매년 150개 이상의 AI 연구 프로젝트가 정부 지원으로 추진된다.


자금 지원도 꼼꼼하다. 컴퓨팅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AI 연산에 필요한 자원을 구매할 때 최대 거래금액의 5%(기업당 최대 500만 위안·11억원)를 지원한다. 이밖에 AI 집적회로 기업을 매년 10곳 선발해 기업당 200만 위안(약 4억 2000만원)을 보조금으로 준다. 중소기업의 AI 혁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혁신 바우처'도 있다. 기업당 매년 50만 위안(약 1억원)이 지원된다. 허난성 정부는 정저우에 공장부지 4만평을 내줬다. 그곳에는 연간 5000대 생산라인이 들어선다.
정부가 움직이니, 민간도 돈 싸들고 AI에 달려든다. 엔진AI의 경우, 2년만에 8차례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2025년 7월 기준 유치한 투자액이 10억 위안(약 2046억원)이다. 소매와 물류의 강자 징둥창업투자, 배터리 기업 CATL 산하의 CATL캐피털(溥泉·푸취안)은 물론 삼성도 투자에 참여했다.
AI 강국 목표를 내건 지 9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실적을 내고 있다. 중국 국가데이터국에 따르면 중국의 AI 특허 수는 세계의 60%다. 지난해 중국의 AI 시장 규모는 1조 위안(205조원,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됐다. 남 조교수는 "고신구에서 걷히는 세수(2조3789억 위안·488조원)가 다시 AI 혁신의 엔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의 실력은 수치가 증명한다.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AI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오픈소스 LLM ‘키미 K2 씽킹’은 벤치마크 평가에서 오픈AI의 ‘GPT-5’ 등 미국 AI 모델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미국 CNBC는 키미 K2 씽킹에 460만 달러(약 67억원) 수준 비용이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수십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미국 오픈AI의 모델 훈련 비용과 비교하면 크게 적다.
중국 휴머노이드 산업도 보여주기식 쇼 단계를 끝냈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는 “중국 정부와 민간의 총력전은 휴머노이드의 ‘딥시크 모멘트’를 예상보다 훨씬 앞당길 수 있다”며 “특히 구독형 로봇 서비스(RaaS) 등 로봇 대중화를 촉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이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선전·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서유진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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