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에너지 정책이 이관되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근간인 전력 공급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AI 혁명의 최대 승부처가 안정적인 전력 확보로 귀결되고 있는데 규제 부처인 환경부가 중심이 돼 에너지 정책을 통제하면 기업 경쟁력은 등한시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산업계는 7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개편에 대해 “세계 최대 반도체 산업 단지로 조성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부터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지금도 각종 환경 규제와 주민 민원으로 전력 공급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환경부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면 공사는 더욱 지연될 우려가 크다”고 꼬집었다.
여권은 이날 고위 당정협의회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관련 조직을 환경부로 이관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신설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원안대로 통과하면 국가 에너지 정책은 사실상 기후와 환경 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환경부가 주도하게 된다.
기업들은 산업 진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던 환경부가 에너지 정책을 맡으면 규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의 에너지 정책은 가정과 산업에 원활한 전력 공급 등 에너지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가 에너지 정책을 수행하면 전력 공급보다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보존의 중요성 등에 우선순위를 둘 가능성이 높다. 환경 단체들의 입김도 한층 강해지면서 환경영향평가 등 규제 강화가 ‘명약관화’하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 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행정소송에 나서며 2019년 준공 계획이 2027년으로 8년 넘게 미뤄졌다. 또 북당진~신탕정, 당진화력~신송산 등 전력 공급 지연 사례는 속출하고 있다. 환경부가 에너지 정책을 맡으면 2047년까지 622조 원이 투자돼 356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력 공급부터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규제 강화는 결국 에너지 도입 가격과 금융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반도체와 AI 등 첨단 산업 경쟁력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산업부는 2년 단위로 ‘전력 수급 기본계획’을 짜고 향후 15년간 국가의 전력 공급을 책임질 발전원(원전·LNG·신재생 등)의 비중을 정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신설되면 전력 수급 계획도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신재생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력 계획이 바뀌면 가스공사와 민간 에너지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위축돼 가스 도입 가격 상승을 떠안아야 할 수 있다.
아울러 환경영향평가 강화로 사업 계획이 불확실해지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 금리는 뛸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영국과 독일은 규제 중심의 기후변화 정책을 도입했다가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자 철회했다”면서 “정부 조직 개편이 전력 수급과 산업 경쟁력, 에너지 안보 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