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킬리만자로의 표범

2025-12-12

나는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을 좋아한다. 이 노래는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가사로 청춘의 고독과 야망을 표현했다.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며 썩은 고기를 찾는 하이에나가 되기보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는 독백은 이 땅 외로운 청춘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하이에나와 표범은 노래의 키워드다. 하이에나가 현실과 타협하며 꿈을 포기하는 나약한 삶의 상징이라면, 표범은 외롭고 힘들지만 자신의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조용필 노래에 등장해 유명세

고산병 피하려면 천천히 올라야

한국은 ‘빨리빨리’로 부작용 많아

자기 인생 되돌아볼 여유 가져야

이 노래 덕분에 탄자니아를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대폭 늘어나자, 1999년 탄자니아 정부의 초청으로 조용필이 탄자니아로 와서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를 둘러봤다. 그해 10월에는 탄자니아 정부의 협조로 조용필의 대규모 다레살람 공연이 추진되었다. 당시 주탄자니아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었던 나는 공연장을 물색하러 다녔지만, 안타깝게도 탄자니아 정부 측의 사정으로 공연은 무산되었다.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라는 의미인 킬리만자로(해발 5895m)는 영국 여왕의 선물이었다. 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영국과 독일은 탄자니아와 케냐의 경계를 일직선으로 그었고, 킬리만자로는 케냐에 속해 영국령이 되었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두 곳의 설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 17세의 독일 황태자(후일의 빌헬름 2세)는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영국 여왕에게 설산 킬리만자로를 독일령 탄자니아에 달라고 요청했다. 여왕은 이 산을 그의 생일 선물로 주었고, 이는 탄자니아에는 신의 한 수였다.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아마추어 등반가들을 탄자니아로 끌어들였다.

킬리만자로에는 정말 표범이 있을까.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는 킬리만자로 정상 기슭에 얼어 죽은 표범 사체가 있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1926년 킬리만자로 봉우리 키보에서표범 사체가 독일 선교사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기록과 사진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엔 기후변화로 산 중턱 이상에서는 숲이 사라지고 먹잇감이 없어져서 표범은 살지 않는다. 표범은 먹이와 은신처가 많은 세렝게티 같은 초원에 주로 산다.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며 목마른 20대를 보낸 세대는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킬리만자로에는 표범보다 더 멋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느림의 미학’이다. 킬리만자로 고산지대는 산소가 희박하여 신속히 올라가서는 안 된다. 현지인 가이드들은 ‘뽈레뽈레(pole pole·천천히 천천히)’를 구호처럼 외치며 등반객들이 천천히 올라가도록 독려한다. 평지를 걷듯이 5박6일 올라가야 고산증을 피하고 정상까지 갈 수 있다. ‘뽈레뽈레’는 킬리만자로 등반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등반객들의 신체가 고도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국내 방송사 취재팀이 와서 2박 3일 만에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조급하게 등반하다 고산증으로 등반에 실패하기도 했다.

킬리만자로도 단숨에 오르려는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으나, 우리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영국 저널리스트인 다니엘 튜더는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2013)를 썼다. 그는 한국이 짧은 기간에 전쟁의 폐허에서 민주화를 이루고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불가능한(기적을 이룬) 나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지나친 경쟁중심의 사회 시스템과 성공과 물질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으로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수준의 자살률과 최저수준의 출산율이다. 그는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희망이 있다고 보았다. 경제적 성공보다는 삶의 질과 행복,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여 한국사회를 더 건강하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생관을 바꾸려면 계기가 필요하다. 인생에 한 번은 킬리만자로에 가보라. 산을 오르면서 ‘뽈레뽈레’를 따라 하다 보면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나아졌어도 기쁨을 잃고 산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멋진 표범은 없어도 킬리만자로는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 준다. 새해의 새로운 각오를 새기는 송년모임에 가면 건배사로 “뽈레뽈레”를 외쳐보시라.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