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진영 대선 후보들이 노동 형해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각각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고소득 전문직 주 52시간제 폐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진단했을 뿐 아니라 이 공약으론 불평등만 강화할 것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지역 소멸 가속화” — 19일 취재를 종합하면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도 허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이 후보는 정부가 기준 최저임금을 정하고 지역별로 ±30% 범위로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올해 최저임금 기준으로 보면 지역에 따라 법정 시급 1만30원보다 30% 적은 7021원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수도권에 고여 있던 자본이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 ‘돈’맥경화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도 지자체장에게 최저임금, 근로시간 규제 등의 특례 적용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노동계는 이 공약이 지역별 격차를 심화할 뿐 아니라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은 낙후됐다는 낙인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후보 공약대로 하면 지역별 최저임금 격차가 최대 60%까지 벌어지게 된다. 오히려 최저임금이 높은 지역으로 인구가 몰릴 가능성이 크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전국이 일일생활권인 나라에서 지역별 차등을 둔다면 낙후된 지역일수록 최저임금이 낮아 오히려 지역 소멸을 가속할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미국이 주별로 최저임금, 법인세 등 규제가 달라 지역별 경쟁이 촉발됐다고도 주장했다. 실제 미국은 연방, 주, 지방 정부, 산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한다. 그러나 50개 주 가운데 연방 최저임금(시급 7.25달러)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책정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연방 최저임금이 2009년부터 16년 동안 동결된 탓에 오히려 30개 이상의 주가 연방 최저임금보다 높게 지급한다. 주별 최저임금이 규정되지 않은 곳은 연방 최저임금을 따른다. 일본도 지역별로 최저임금이 다르지만 격차 문제가 벌어져 지역별 차등 등급을 4개에서 3개 구간으로 줄이는 등 부작용을 완화하는 추세다.
이 후보의 ‘러스트벨트 리쇼어링’ 공약 역시 최저임금의 하한선을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떠난 기업들이 국내 주요 국가산단으로 돌아오는 경우 원소재국 노동자가 국내에서 현지 노동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산단 특수비자(E-9-11)를 신설해 이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에 대해 일정 기간 최저임금 적용을 완화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어긋난다. ILO 협약은 출신국 등을 이유로 고용, 직업상의 기회에서 차별 대우해선 안 된다, 모든 임금노동자에 적용하는 최저임금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김 후보도 지난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시절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것은 헌법(평등권), 국제기준(ILO 제111호 협약), 국내법(근로기준법·외국인 고용법) 등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국회에 답했다.
전문직 주 52시간 예외? “노동시간 단축 역행”
근무일 조정해 주 4.5일제? “유연화에 방점”
중처법이 ‘악법’? “예방 안하니까 처벌하는 것”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전문직 주 52시간제 예외’ 공약에 대해서도 노동계에서는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 유연화만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파견법을 논의할 때나 파견 업종을 확대할 때 모두 전문직에만 적용하겠다고 했었지만 제조업, 건설업 등에서도 파견이 늘었다”며 “전문직만 하겠다는 말은 사기”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주 4.5일제’는 근무일을 조정해 월~목요일은 9시간, 금요일은 4시간 근무하는 방식으로,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은 그대로 두고 일하는 시간을 몰아주는 유연근무제에 가깝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노동을 유연화해서 수요에 맞게 노동력을 마음대로 배치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은 재계의 숙원 사업”이라며 “사회 전체로 봤을 때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이 더 사회적 공익에 부합하기에 법률과 국제 기준이 그렇게 정해지는 것이다. 후자가 우리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김문수·이준석 후보의 비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후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법’이라 규정하며 “중소기업에는 적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평택항 이선호, 파리바게뜨 SPL 박선빈, DLENC 건설 이용직, 강보경” 등 산재 사망 노동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며 “예방하라고 해도 돈이 들어서 안 했고, 그래서 처벌하자고 만든 법”이라고 반박했다. 중대재해 사망 사고의 94%는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며, 그중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업재해율은 69.9%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중대해처벌법 시행 이후 50인 미만 기업에서의 처벌은 1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