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에 쌀 채워 귀국한다…日관광객 '한국 쌀 사재기' 왜

2025-05-20

‘생각보다 간단해. 쌀을 가져가는 방법!’

지난 6일 한 일본인 여성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영상의 제목이다(사진). 한국에서 산 쌀 2㎏을 인천공항에서 일본으로 가져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여성이 쌀을 사 인천공항에서 ‘동식물 수출·검역’ 서류를 작성하고 증명서를 받는 장면이 일본어 설명과 함께 나온다. 이 영상 조회수는 20일 오후 기준 12만건에 육박했다.

일본 관광객 한국서 ‘쌀 사재기’ 열풍

이외 “한국 서울에서. 이번 미션은 쌀을 사서 돌아가는 것”, “쌀을 사서 돌아가려면 근육 트레이닝” 등 한국에 관광 온 일본인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쌀 구매 후기가 상당하다. 여행용 가방 등에 쌀을 담아가기도 한다. 한국 관광 필수 쇼핑 품목에 쌀이 포함됐을 정도다.

지역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 1일부터 19일까지 경남 내 이마트 7곳(창원·양산·김해·마산·사천·통영·진주)에서 판매된 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 올랐다. 이마트 관계자는 “국내 쌀 소비로 지난해 쌀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가량 줄었는데 최근 쌀 판매가 늘어난 것은 일본인 관광객 등의 구매가 늘어난 덕분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쌀값 폭등’ 여파…한국 쌀, 일본 수출↑

일본인들에게 최근 한국 쌀이 인기다. 일본 쌀값이 1년 사이 두 배로 오른 상황에서 한국 쌀이 ‘값도 싸고 맛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일본 전국 슈퍼에서 판매된 쌀 가격은 5㎏당 4214엔(약 4만원)이지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공개한 이번 달 국내 쌀 소매가는 2만9782원으로 1만원 이상 싸다.

일본으로 한국 쌀 수출도 이어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때 구호용 쌀 수출을 제외하고 일반용으로 일본에 쌀을 수출한 것은 199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 20일 경남 하동에서는 ‘경남 하동 쌀 일본 첫 수출’을 기념하는 선적 행사가 열렸다. 지역 대표 브랜드 쌀 ‘하동섬진강쌀’은 이번 달에만 일본에 80t이 수출된다.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에 160여개 점포를 거느린 현지 대형마트 ‘헤이와도(Heiwado)’를 통해 판매된다. 연말까지 200t을 추가 수출할 계획이다.

하동쌀 첫 일본행…먼저 간 해남쌀 “판매 열흘 만에 동나”

앞서 전남 해남과 강원 삼척에서도 일본에 처음으로 쌀을 수출했다. 지난달부터 5월 19일 현재까지 해남에선 ‘땅끝햇살’ 22t, 삼척에선 ‘삼척동자 맑은쌀’ 20t을 수출했다. 삼척 쌀은 올해 안에 40t 더 수출될 전망이다. 해남군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도쿄의 한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땅끝햇살’은 첫 물량 2t이 열흘 만에 동나고 곧이어 수출된 10t도 전량 판매됐다. 전남 강진에서도 오는 26일 일본에 수출할 쌀 200t이 선적되며, 150~200t 추가로 수출할지 협의 중이다.

일본 수출을 협상 중인 곳도 있다. 지난 19일 경남 진주에서는 일본 바이어가 찾아와 “500t을 수입하겠다”고 말하는 등 쌀 수출 상담을 했다. 같은 날 경북 상주와 포항에선 지역 쌀 1t씩 일본에 보냈다. 일본 현지 매장에서 판매, 선호도를 확인한 뒤 수입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일본이 수입 쌀에 1kg당 341엔(약 3400원) 관세를 매겨 그동안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최근 일본 쌀값이 크게 뛰면서 수입쌀의 경쟁력이 나아지고 있다.

일본 간 한국쌀 ‘밥맛 좋기로 소문난’ 고품질

일본 수출길에 오른 쌀들은 모두 ‘밥맛 좋기로 소문난’ 국산 품종이다. 전남 쌀은 전남농업기술원에서 7년에 걸쳐 육성한 고품질 쌀인 ‘새청무’다. 쌀알이 투명하고 단단해 밥을 지으면 찰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며 식감이 쫀득한 게 특징이다. 경남 쌀은 남부 평야에서 주로 재배되는 최고 품질 벼인 ‘영호진미’다. 밥을 했을 때 씹을수록 고소하며 질감이 부드럽다. 수출 협상 중인 경북 상주의 쌀 브랜드 ‘미소진품’도 2020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육성한 품종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쌀알이 맑고 투명하다’는 것은 단백질 함량이 적어 ‘밥을 지으면 밥맛이 좋다’는 의미라고 한다. 쌀에 단백질 함량이 낮을수록 밥알이 부드럽고 탄력적이다. 단백질이 많으면 조리 시 쌀의 수분 흡수를 방해하고 팽창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담백질 함량 품질 기준은 수(6.0% 미만), 우(6.1∼7.0%), 미(7.1% 이상)로 나뉘는데 이번에 일본에 수출되거나 수출 협상 중인 새청무(5.6%), 영호진미(6%), 미소진품(5.8%)으로 수에 해당한다.

일본서 수출 문의 잇따르지만 “수출 이어질진 미지수”

‘일본 쌀보다 우리 쌀의 밥맛이 떨어진다’는 인식은 편견이라는 게 쌀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NH농협무역 관계자는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찰기와 윤기가 뛰어난 자포니카 계열 품종으로 비슷한 데다 자체 생산량이 많아 한·일 양국은 본래 쌀 수출입이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며 “일본 내 쌀값이 치솟으며 일본 유통업자를 중심으로 한국 쌀에 대한 수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최근 한국쌀 인기는 일본 쌀값 폭등 영향이 커 가격 경쟁력을 갖고 수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진 좀 더 확인해봐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수출이 계속된다면 국내 쌀값 안정이나 재고 소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동·해남·삼척·부산=안대훈·김민주·박진호·황희규·김정석·이은지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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