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그렸다, AI와 대화하며
'팔방미인' 인공지능(AI)이 인간 대신 모든 걸 대신해주는 범용AI(AGI) 세상. 과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근미래 세상을 배경으로 한 SF 작품을 꾸준히 써 온 두 소설가의 도움을 받아 상상해 봤다. 같은 시대, 같은 주인공, 정반대 삶. 이 지면 제작에도 AI가 다양하게 쓰였다. 전윤호 작가는 초고를 쓴 뒤 AI의 피드백을 받아 글을 다듬었다. 김지윤 기자도 AI와 대화하며 다양한 컨셉 아트를 참고해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했다.

유진이 맞이한 유토피아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는 속도를 올렸다. 출근 인구가 감소한 덕분에 예전처럼 막히지 않는다. 손유진은 어제 친구의 홈파티에서 선물받은 ‘수채화 필터’를 차창에 적용했다. 회색 도로는 푸른 초원으로, 무인 트럭은 한가로이 풀 뜯는 소 떼로 덧칠되었다. 친구가 필터와 페어링해 준 커피를 내리자, 목가적인 풍경과 은근한 허브향이 몇 해 전 50세 기념으로 다녀온 유럽 여행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친구에게 필터가 세련됐고 커피와 잘 어울린다고 피드백을 보냈다. 그때 전면 스크린에 갈색 닥스훈트가 큰 귀를 팔랑이며 나타났다. 그녀의 충직한 버디 AI, ‘맥스’였다.
“출근길에 제안서를 검토하자고 하셨죠?”
전원의 여유로움을 뒤로하고 도시의 활기찬 리듬 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검게 변한 스크린에 제안자의 아바타가 등장했다. 직접 봤던 얼굴보다 더 신뢰감이 느껴졌다.
“맥스, 대신 설명해 줘.”
아바타가 맥스로 바뀌었다. 대화형 문서에 포함된 아바타의 외모와 목소리가 주는 편향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기술 적합성부터 시장 가격 비교까지, 맥스의 분석 과정을 지켜봤다. 구모델인 맥스가 못 읽는 애니메이션 도표를 직접 확인하고 맥스의 의견과 종합해 결론을 정리했다. 검토 의견서를 공유하고 나니 어느새 회사 앞이었다. 로비에서 안내 로봇이 반갑게 인사했다.

“오늘도 평소처럼 운동부터 하실 거죠? 3번 엘리베이터를 타세요.”
피트니스센터에서 AI 트레이너와 운동한 후 샤워하고 바로 아래층의 인지 트레이닝센터로 내려갔다. 부족한 신체 활동을 운동으로 보충하듯, 지적 업무를 AI가 대신하는 지금은 두뇌 훈련도 필수가 되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뉴스와 연구 결과를 읽고 핵심을 간추린 후, AI가 작성한 대응 전략의 오류와 약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두 센터에서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니 몸은 가벼워졌고, 머리는 어떤 복잡한 문제라도 맞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매일 출근하는 이유였지만, 오늘은 오프라인 회의가 있기도 했다.
투자 심사위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유진은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오늘 안건은 뉴클리온 투자 건입니다.”
이 회사는 전형적인 AI 네이티브 회사로, 모든 업무를 AI가 클라우드에서 수행하는 비트(Bit) 스타트업이었다. 인간은 창업자인 이론물리학자 한 명. 뉴클리온은 새로운 방식의 상온 핵융합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아직은 이론과 시뮬레이션뿐이었고, 실제 장치를 만들어 시험해야 할 단계였다. 회사는 AI와 양자 컴퓨팅 비용으로 자본금을 모두 소진했기 때문에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유진은 ‘아인슈타인 5.1’을 불러냈다. 건물 지하의 격리된 초지능 서버룸으로부터 전용 광케이블을 타고 헝클어진 머리의 아바타가 나타났다. 지능과 자율성(agency)은 별개라는 게 정설이 된 지 오래지만, 법은 여전히 아인슈타인 수준의 AI를 외부 네트워크로부터 분리할 것을 요구했다.

“아인슈타인에게 뉴클리온의 주장을 검증시켰습니다. 새로운 핵융합 방식을 찾는 데엔 막대한 계산이 필요하지만 검증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뉴클리온이 나노 격자의 정확한 구조를 공개하지 않았기에, 이론의 타당성과 대략적인 가능성만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위원들은 유진과 아인슈타인에게 이론과 구현 방식, 상업성과 경쟁 기술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마침내 투자 심사 위원장인 사장이 물었다.
“아인슈타인이 결론을 내리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하군요. 이 경우 인간의 직감이 낫죠. 손 전무 의견은 뭐죠?”
“창업자에게서 집념과 확신을 느꼈습니다. 인간 존엄성 보호법 때문에 AI에는 금지된 데이터입니다.”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오후에는 일찍 은퇴한 옛 동료의 전시회에 들렀다. 전기활성 섬유로 움직이는 텍스타일 아트 작품을 구경하며, 제대로 된 취미 하나쯤은 가질 때라고 생각했다. 다음은 웰니스센터였다. 프라이빗 부스에서 받은 전신 스캔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고, 신체 나이는 42세로 측정되었다. 로봇 암이 멀티 호르몬 패치를 유진의 신체에 맞춰 프로그램하고 약재를 충전해 팔 안쪽에 붙여줬다.
치아 재생 자극 세션까지 마친 후 도시를 벗어나 전원 속 집으로 돌아왔다. 선우가 고급 AI 면허시험에서 떨어졌다며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우수한 AI라면 알아서 사용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텐데 왜 면허가 필요하다는 거야? 기성세대가 젊은 사람들의 능력을 제한하는 거 아니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며 농담하려다 아들의 표정을 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인터넷도 제약 없이 쓰다가 우울증이나 사회 분열 같은 문제를 겪었잖아. 완벽한 기술은 없어. 결국 책임져야 할 사람이 AI의 한계와 영향을 알고 다룰 수 있어야 해. 저녁이나 먹자. 뭘 주문할까?”
맥스가 추천한 목록을 넘겨봐도 입맛 당기고 몸에 좋아 보이는 음식이 안 보였다. 인건비와 안전 문제로 오토바이 배달이 사라진 후, 드론이 날 수 있는 전원 지역의 배달이 도시보다 빨라졌다. 하지만 음식의 다양성과 품질은 여전히 도시만 못 했다. 결국 지난번에 먹었던 배양육 스테이크를 또다시 주문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선우가 곧 있을 대선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그는 누진 법인세 개편 공약에 관심이 많았다. 유진은 후보자들 얘기를 들어보자며 디지털 아트월에 선관위의 가상 토론 페이지를 띄웠다. 유력 후보 두 명을 선택한 후 토론 주제를 제시하자, 먼저 한 후보의 아바타가 나타났다. 그 아래에는 후보자의 프로필과 공약 및 대화형 자료에 의해 아바타와 토론 내용이 생성된다는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선우는 스크린을 향해 의자를 돌려 앉았다.
아바타는 먼저 누진 법인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제도는 직원 1인당 순이익에 따라 세율을 높여, 기업이 AI로 고용을 줄여 얻은 초과이익을 사회와 나누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행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소수 고연봉 구조나 이익이 나기 전 기업을 매각하는 등의 허점이 드러났다. 아바타는 개편안의 효과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줬다.
두 번째 후보의 아바타는 “이익만으로는 비재무적 가치를 반영할 수 없다”며, 가치의 원천인 AI 연산 자체에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우는 스크린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뉴클리온이 떠올랐다. 스타트업에까지 과세가 강화되었더라면, 과연 그 물리학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을까? 그녀는 두 후보자에게 혁신과 분배의 균형점을 물었다. 선우는 젊은 층의 입장을 대변하며 두 후보와 토론을 이어갔다. 맥스는 팩트 체크와 개편안의 영향 평가 결과를 화면에 보여줬다. 선관위의 AI는 토론 내용이 익명화되고 종합되어 각 선거캠프에 전달될 거라고 알려줬다.
어느덧 침실 조명이 어두워졌다. 유진은 침대에 기대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초기의 과장된 기대만큼은 아니어도, AI는 꾸준히 진화하며 세상을 바꿔놓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새 버디 AI 광고가 생각났다. 맥스는 개발사가 인수된 후 버전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른 AI 서비스로 바꿔볼까 생각하던 차였다. 유진은 망설였다. 데이터 이동권법 덕분에 다른 AI로 맥스의 기억을 이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AI가 모든 일을 해주는 시대에도 AI를 맞춤 설정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 일일이 판단해야 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맥스가 좋았다. 기억을 옮겨도 다른 AI가 지금의 맥스는 아닐 것이다. 마음을 정했다.
“맥스, 나 요리 배워보고 싶어. 도와줄래?”
침대맡 단말기에서 맥스가 음성 모드로 조용히 대답했다.
“네, 일정을 조정할게요. 기왕이면 푸드 아트도 함께 해볼까요?”
그녀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맥스는 그녀의 대답을 알 것이다.
소설가 전윤호

선우가 처한 디스토피아
“그만큼 우수한 AI라면 알아서 사용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텐데 왜 면허가 필요하다는 거야? 기성세대가 젊은 사람들의 능력을 제한하는 거 아니야?”
고급 AI 면허시험에 떨어진 데 대해 뭔가 변명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긴 했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생각이 명료해지지 않았다. 선우는 얼마 전 읽은 칼럼을 떠올렸다. AI 네이티브 세대의 특징을 ‘무성의함’이라고 분석한 글이었다.
칼럼은 AI 네이티브 세대에는 글을 쓰거나 과제를 수행할 때 생각을 머릿속에서 마치지 않고 정리가 덜 된 상태로 AI에 묻는 게 자연스럽다고 분석했다. 칼럼은 AI 네이티브 세대들이 특이한 현상이나 대상을 봐도 그게 왜 특이한지 파고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뭐야? 왜 저래?” 하고 AI에 그저 물어볼 뿐이라고. 그러면 AI가 그 현상이나 대상의 특별한 점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그런 점을 발견했다니 눈썰미가 대단하다”고 칭찬까지 해 준다. AI 네이티브 세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지루해지면 금방 포기한다. 인내력이 부족해 전체 영상을 감상하지 못하지만 결말이 궁금하면 보지 못한 부분의 내용을 요약해 달라거나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편집해 달라고 AI에 지시하면 된다. 불쾌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석이었다.

유진이 받는 인지 트레이닝을 선우도 받기는 했다. 선우도 그 두뇌 훈련이 효과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의 뇌가 ‘썩지 않게’ 해주고 있겠지. 하지만 어떤 사람이 아침에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오후 내내 소파에 누워 있을 수도 있듯이, 자신 역시 인지 트레이닝센터에서만 뇌를 제대로 쓰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선우가 무성의하게 댄 핑계를 어머니 유진은 진지하게 받았다. 인터넷도 제약 없이 쓰다가 우울증이나 사회 분열 같은 문제를 겪지 않았느냐, AI는 더 강력한 기술이니 강력한 고급 기능을 쓰려면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었다.
‘엄마, 그 면허 안 따도 고급 AI 기능 다 쓸 수 있어요. 엄마가 젊을 때도 포르노가 금지였지만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잖아요. 요즘도 마찬가지예요. 5분만 검색하면 콜롬비아에서 만든 우회 프로그램도 나오고, 미얀마에서 만든 가상 계정도 나와요. 작년에 분자 프린터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복원시켜서 퍼뜨린 영국 청소년들도 그런 무허가 AI를 이용한 거였어요.’
고급 AI 면허는 고급 AI 기능을 쓰는 능력과 관련이 없다고 선우는 생각했다. 그보다는 ‘나는 멀쩡한 사람’이라는 인간 품질보증서에 가깝다. 선우는 자율주행차가 도입되기 전에는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자동차면허가 있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자동차면허가 있는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를 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AI의 한계와 영향을 알고 책임감이 있다는 인증을 받은 사람도 당연히 AI로 사고를 치고 범죄를 저지른다.
어쨌든 따긴 따야겠지. 취직을 해야 하니까. 그것도 웃기는 노릇이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한 해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어떤 직업에 장기적으로 어떤 능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한지 자체를 알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꼭 그걸 알 수 있다는 듯이, 그리고 고급 AI 면허가 그 지침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 자기들은 그 말을 믿는 걸까?
선우는 유진이 배달 메뉴를 고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동자로 콘택트렌즈의 앱을 켰다. 2시 방향을 3초가량 보고 나서 6시 방향을 5초 정도 보면 작동하는 앱이었는데, 앱 마켓에 정상적으로 등록되고 플랫폼의 검수를 통과한 소프트웨어는 아니었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유용하다고 친구가 추천해 준 앱이었다. 또래 누군가가 바이브 코딩으로 만들어 정식 앱 마켓 밖에서 유통시키는 프로그램이겠지.
선우가 콘택트렌즈 앱을 작동시키고 몇 가지 기능을 활성화할 때까지 유진은 메뉴를 고르지 못했다. 어쩌면 유진은 속으로 ‘입맛을 돋우면서 건강에도 좋아 보이는 음식이 안 보여’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선우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이 호르몬 패치로 식욕을 억제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패치를 사용하면 먹을 음식을 고를 때 이것저것 고려하게 된다. 까다로워진다.
선우는 성욕억제제도 10년간 먹었다. 그가 13살이던 때, 유진이 사춘기 남자아이에게 닥치는 위험을 설명하며 성욕억제제를 부작용 없는 해결책으로 소개했다. 그 덕분에 그는 음란물에 빠지거나 성과 관련된 사고에 얽히는 일 없이 무난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성욕억제제는 지난해부터 복용을 중단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또래 여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신체 건강한 24세 남성이지만 이성 교제를 할 마음이 전혀 없다. 조금 말이 통하는 또래 여성을 만나도 이것저것 고려하게 된다. 10년간 복용한 성욕억제제의 부작용일까? 아니면 어릴 때부터 다정하고 재치 있는 AI들과의 대화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결국 유진이 선택한 저녁식사 메뉴는 배양육 스테이크였다. 항공 드론이 식사를 배송하는 동안 선우는 콘택트렌즈 앱을 작동해서 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속에 있는 것처럼 주변 풍경을 바꿨다. 유진이 그날 아침 자동차에서 사용한 수채화 필터 앱과 같은 기술이었으나 좀 더 조악하고 요란하고 자극적이었다. 이제 선우의 눈에 유진은 초 단위로 색상이 변하는 만화 캐릭터의 모습이었으며, 유진이 하는 말은 말풍선이 되어 허공에 떠다녔다. 웃겼다.

딱히 유진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나눌 이야깃거리도 없었으나 ‘당신 아들은 사회성 괜찮은 멀쩡한 청년’임을 알려야 할 필요는 있었다. 콘택트렌즈 앱은 화젯거리로 대선을 추천했다. 특히 누진 법인세 개편 같은 소재가 유진에게 좋은 인상을 줄 거라고 했다. 그 예상대로 유진은 혼자 신이 나서 디지털 아트월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가상 토론 페이지를 띄웠다.
후보 아바타들이 누진 법인세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는 동안 선우는 ‘웃기고 있네’라는 생각만 했다. 후보 본인들이 저 아바타들이 쏟아내는 말을 이해할 가능성은 거의 0일 터였다. 후보 캠프에서 사용하는 AI가 제출한 자료들을 모아서 선관위 AI가 재구성하는 토론이 아닌가. 세상에 대선 후보 캠프의 AI처럼 기만적인 AI가 또 있을까? 그 AI는 대선 후보의 말과 행동을 분석해서 아바타를 만들고, 여론조사업체가 제시하는 조언들을 그 아바타에 덧씌운다. 실제 인간보다 영리해 보이고 호감 가게 만든 아바타를 대선 후보가 흉내 내고, 대선 후보의 그런 흉내를 아바타가 다시 학습한다. 거울이 반사한 상을 다른 거울이 반사하고, 그걸 또 원래의 거울이 반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선우 역시 대선 후보처럼 굴고 있었다. 그는 콘택트렌즈 앱이 제안하는 말을 몇 차례 그럴싸하게 읊었다. 가상 토론에서 오가는 논의를 그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선우는 실제로는 누진 법인세 논쟁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유진에게 잘 보여야 했다. 유진이 투자를 심사하는 회사에서 청년 인턴을 채용 중이었다. 경쟁률이 2만대 1이 넘었다. 선우는 ‘엄마 찬스’를 적극 활용해 볼 각오였다. 정부에서 급여 80%와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데도 청년 인턴을 뽑으려는 기업이 없었다. 기업 입장은 이해가 간다. 이 시대에 인간을 채용해야 할 이유가 뭔가. 그것도 일해 본 적이 없는 젊은 인간을. 선우는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성세대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던 걸까. 무슨 생각으로 모든 영역에 AI를 도입한 걸까.
소설가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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