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정책 수준 그쳐…"고민 흔적 없다"
국민참여형 공론화위, 문재인 정부 답습 우려
지역의사제도, 공약 중 가장 필요·시급한 정책
재정 마련 방안 빠져…주치의·일차의료 돌파구
[세종=뉴스핌] 신도경 기자 = 제21대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의료와 국민연금관련 공약을 내세웠지만, 재정 방안은 쏙 빠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뉴스핌 취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의료 공약 중 가장 눈에 띄는 공약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시한 지역의사제 등 지역 의료 강화 방안을 꼽았다. 반면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국민참여형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 의료 공약, 윤석열 정부 수준 그쳐…국민참여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 '우려'
전문가들은 종합 평가에서 세 후보 모두 의료 분야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의료 대란 해결과 부처 개편 공약을 내세웠을 뿐 정책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두 후보에 비해 정책 공약을 내세웠다. 다만 윤석열 정부에서 제시한 정책 과제 중 일부 뽑아 제시한 수준에 그쳤다. 의료 분야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윤 정부에서 드러났다면 차기 정부에서는 이 과제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떻게 해결할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은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이재명 후보를 빼고 나머지 후보는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다"며 "특히 이준석 후보는 정책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했는데 아쉽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대 한 교수도 "김 후보나 이준석 후보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재명 후보 공약도 재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들은 공약 중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국민참여형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에 대해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처럼 대통령이 원하는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 교수는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위원회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여러 직역의 갈등이 동반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톱다운(하향식) 방식이 불가능하고 정부, 국회, 의료만 합의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의료 대란 과정에서 증명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국립대 교수는 "공약 중 국민참여형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가 가장 우려된다"며 "정치인들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만들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도 "문재인 정부처럼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 여부로 결정하겠다며 위원회를 설치했다. 시민참여단의 59.5%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찬성했지만, 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면서도 향후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해 탈원전 기조를 유지했다.
◆ 지역의사제도, 중요·시급 정책 1순위…재정 마련 방안 빠져
가장 중요하거나 시급한 정책으로는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지역의사제도'가 꼽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역의사제도만으로 지역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 소멸 문제와 국립대 거점화를 위해 국립대 환경 인프라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대신 국가가 주거, 생활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복지부는 지난 4월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하고, 오는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마 과장은 "인구 소멸로 환자가 없는데 의료 인력만 지역에 남아 일하는 것은 실효적이지 않다"며 "지역 의료 문제는 지역 소멸과 맞물려 있어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정부가 국립대 병원 거점 병원 역할을 강화할 때 기구나 장비에 대한 재정 투입은 하는데, 환경에 대한 재정 투입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국립대 거점 병원 강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환경에 대한 인프라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서울아산병원 등 빅5 병원은 국립대 병원과 비교해 환경부터 다르지 않느냐"며 "가격도 차별화가 안 돼 있어 같은 가격이면 환경이 더 좋은 병원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후보들이 국가 안전망 기간 사업에 대한 재정 확보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 개혁 정책을 지속하기 위한 재원 대안 없이 공약만 제시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필수 의료를 유지하기 위해 건보재정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지자체 협업 등 추가 대안을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재정 마련의 돌파구로 주치의 제도, 비대면 진료, 방문 재택 진료에 대한 정책 방안을 제시했다. 돌봄 정책으로 고령층의 건강을 유지해야 청년 세대의 돌봄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으로 아낀 의료 지출을 중증·응급 의료 유지에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이 교수는 "방문 재택 진료를 강화하기 위해 AI(인공지능), 의료정보 플랫폼을 어떻게 마련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며 "5년 안에 제도들을 잘 짜면 10년 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할 수 있고 이를 통한 경제적 효과도 상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sdk19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