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견·중소기업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노무 대응 역량이 약한 데다, 분규에 휘말려 원청 대기업과의 계약이 끊길까 전전긍긍한다. 원청 대기업과 강성 하청노조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규모별 노사분규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노사분규의 대부분은 중소·중견 기업에 집중됐다. 지난해 전체 131건 중 84건(64%), 2023년에는 223건 중 157건(70.4%), 2022년에는 132건 중 102건(78%)이 모두 10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노란봉투법까지 시행되면 대기업보다 법률 대응이나 노사 관리 여력이 약한 원청 중견기업이 더 치명상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한 중견 건설사 사장 A씨는 “복잡한 공정이 필요한 수주는 아예 포기했다”며 “중견기업은 대기업처럼 대형 로펌과 노무 인력을 동원하기 어렵다보니 강성 노조에 찍히면 버틸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먹거리 자체가 줄어들 거란 위기감도 높다. 원청 대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분규가 발생한 협력사와 거래를 이어갈 이유가 없고, 핵심 부품도 외주보다 내재화해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33개 자동차 부품업체가 가입된 자동차산업협동조합의 이택성 이사장은 “사용자 개념이 확대되면 원청 입장에서는 분규가 적은 협력업체를 찾거나 해외로 공장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하청업체 노조들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기업이 상대해야할 교섭 파트너가 누군지조차 불확실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노동법·인사 전문 세계 로펌 연합체 유스래보리스는 “특정 기업의 통합 노조가 기존 사내 직원과 하청 업체의 직원을 동시에 대표하는 식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결국 원청 노조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원청 노조가 하청 직원들에게 산별노조에 가입하라고 압박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19일 열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중소기업계 간담회에서도 건설·기계·조선·자동차·표면처리 업계 대표들은 이런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중소기업은 절대 다수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자 우리 경제의 뿌리”라며 “(노란봉투법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했다. 중소기업학회장을 지낸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하청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되레 하청업체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려 일자리 감소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