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을 가진 그는 1978년 10월7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기업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지요. 하버드대 정치학과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MBA)을 졸업했고요. 대학 졸업 뒤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하다가 2010년 8월 자본금 30억원으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4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50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쿠팡의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입니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계정 약 3370만개에서 이름, e메일, 전화번호, 주소 등이 유출됐다고 공지했습니다. 국내 성인 4명 중 3명, 사실상 전 국민의 정보가 새어 나가면서 쿠팡의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지요. 책임의 화살은 김 의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쿠팡Inc 의결권 70%를 보유한 실질적 오너이자 주요 결정을 내리는 책임자인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보상안을 내놔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요. 하지만 김 의장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5년 국내에서 열렸던 기자간담회가 마지막입니다. 오는 17일 열리는 국회 쿠팡 청문회에 김 의장이 출석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김범석
김 의장은 수많은 쿠팡 택배 노동자 사망과 물류센터 화재 등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직접적인 사과는커녕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쿠팡과 관련한 노동자 사망사고는 알려진 것만 2020년 4명, 2021년 4명, 2022년 1명, 2023년 1명, 2024년 2명, 올해는 무려 8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김 의장은 2021년 쿠팡 한국법인 이사회 의장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며 매번 뒷짐을 졌고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았지요.
그런데 쿠팡의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태는 다릅니다. 외부 침입 등 해킹이 아닌 퇴사한 직원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안시스템 등 사내 문제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김 의장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7일 열리는 쿠팡 청문회에 김 의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김 의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 요구에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불출석해왔습니다. 2015년에는 “운동을 하다 부상을 당해 목발을 짚고 다니고 있다”며 출석하지 않았지요.
일각에서는 김 의장이 이번에도 국회 출석을 거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쿠팡 사태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박대준 쿠팡 대표를 사실상 경질하고 쿠팡의 모회사인 미국 쿠팡 Inc는 한국에서 근무하지 않은 해롤드 로저스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을 임시대표로 선임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로저스 임시대표를 김 의장 대신 출석시켜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것은 아닌지, 하버드대 동문이자 그룹 내 2인자가 한국어로 묻고 영어로 답한 뒤 통역을 거치다 보면 답답한 ‘모르쇠 청문회’가 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과방위는 이번에도 김 의장이 불출석할 경우 동행명령 발부 등 법이 허용하는 강제 수단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일벌백계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무슨 ‘팡’인가 하는 곳의 사람들은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은지 경제제재가 너무 약해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책임회피·은폐 의혹에 들끓는 여론
김 의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쿠팡은 김 의장 명의의 사과문을 내지 않았고 사후조치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 어린 사과가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쿠팡은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공지문에 개인정보가 ‘노출’ 됐다고 했다가 뒤늦게 ‘유출’로 수정했습니다.
쿠팡의 사과문 해프닝은 또 어떤까요. 쿠팡은 지난달 30일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 등에 고객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배너 형태’의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기막힌 것은 이틀 뒤 사과문이 종적을 감추더니 ‘로켓배송’을 홍보하는 배너 광고로 교체됐다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 기업들이 홈페이지 접속과 동시에 팝업으로 사과문을 명확히 게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경찰청이 2차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다”고 수사당국 뒤에 숨으려고 했지만 경찰청의 요구로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SK텔레콤과 롯데카드 등이 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자 서둘러 보상안과 대책을 내놓은 것과 비교됩니다. 쿠팡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책임 회피 의혹은 점입가경입니다. 쿠팡이 지난해 11월 약관에 추가한 제3자 불법 접속에 따른 손해 면책 규정만 해도 그렇지요. 쿠팡이 이번 사태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어서입니다. 정부는 쿠팡 이용약관 중 ‘서버에 대한 제3자의 모든 불법적 접속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손해에 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면책 규정을 수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얼마 전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미국의 JP모건은 “쿠팡이 한국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해 한국인들이 쿠팡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들은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는 보고서였지요. 김 의장이 “한국 사업을 깃털처럼 가볍게 보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뒷받침하는 자료일지 모릅니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고객이 생각하도록 만들겠다(2018년·2020년 발언)”던 김 의장은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고객의 삶을 이전보다 100배 낫게 만드는 게 쿠팡의 미션(2020년)”이라고 공언했던 그를 오는 17일 청문회에서 만날 수 있기를 온 국민이 바라고 있는데 또다시 모른 척하지는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