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빌리티 산업의 기대주로 꼽히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서비스의 상용화 시점이 당초 목표보다 멀어질 전망이다. 잇따른 항공 사고로 안전 기준이 강화되는 추세인데다, 관련 인프라 구축도 진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UAM 개발 기업 수퍼널은 지난 3월 미국에서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 ‘S-A2’의 첫 시범 비행을 진행했다. S-A2는 수퍼널이 지난해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공개한 첫 제품으로 최대 4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다. 수퍼널은 2028년까지 미 연방항공청(FAA)의 인증을 받아 S-A2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인데, 최근 이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글로벌 UAM 시장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조비에비에이션은 당초 자사 기체의 상용화 시점을 2024년에서 2026년으로 연기했다. 그런데 FAA 인증 절차가 길어지며 이마저도 불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FAA는 기체가 안전 기준에 맞게 설계·제작됐는지 검증하는 형식 인증을 5단계에 걸쳐 진행하는데, 조비에비에이션은 지난해 업계 최초로 3단계 인증을 취득한 이후 현재까지 4단계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항공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12월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179명이 사망했고, 미국 워싱턴DC에서는 지난 1월 여객기와 헬기가 충돌해 6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체가작은 UAM은 여객기보다 조류 충돌에 더 취약하고, 사고 발생 시 도심 피해 우려는 더 크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안전 기준이 요구될 수 있다.

안정성이 확보된 UAM 기체가 출시되더라도 상업 운행까지는 갈 길이 멀다. UAM 승강장부터 관제 시설, 기체 충전소까지 대규모 인프라 시설이 필요하다. 5세대(5G) 통신망을 UAM 운항 고도(300~500m)에 새로 구축하는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승강장마다 기체가 이·착륙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관제·통신 등 여러 시설을 갖춰야 한다”라며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도심 항공 운항이 가능하게 되더라도 실제 소비자들이 돈을 내고 이용할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UAM 상용화가 지연되다 보니 UAM 제조사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조비에비에이션의 연간 순이익 적자 규모는 2021년 1억7260만 달러(약 2400억원)에서 지난해 6억80만 달러(약 8500억원)로 늘었다. 조비에비에이션은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보통주 4000만주를 공모해 투자자로부터 2억2000만 달러(약 3100억원)를 조달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수퍼널도 영업손실이 2022년 1955억6700만원에서 지난해 6583억5900만원으로 2년 만에 236.6% 늘었다.

대규모 적자에도 글로벌 기업들이 UAM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UAM 시장 규모가 2040년 1조 달러(약 14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체·운항·통신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산업적 중요성도 크다. 국내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올해 안에 수도권에서 상용하겠다는 목표로 전남 고흥, 인천 아라뱃길을 규제 특례 지역으로 선정해 운영 중이다. 현재 국내 모빌리티·항공·통신·건설 등 분야별 기업 43곳이 10개의 컨소시엄을 꾸려 UAM 운항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현재 진행 상황으로 볼 때 이게 올해 안에 상용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UAM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사고 책임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UAM은 소재, 자율주행, 위성통신 등 각 분야의 첨단 기술 적용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그 경쟁력이 큰 의미를 갖는 만큼 적극적인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