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필요합니다! 함께 일할 사람 좀 보내주세요!”
“도입은 했지만…데이터를 해석할 사람이 없어요.”
이제는 스마트공장을 도입했는가보다,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현장에서는 기술보다 사람의 문제가 더 절실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축, 바로 기술 공급기업의 육성과 실효성 있는 인력양성이다. 기술 공급기업과 숙련된 인재가 함께 성장해야만 비로소 스마트제조혁신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게 된다.
◇핵심은 '공급기업'과 '인재'
우리나라는 현재 스마트공장 3만 개 이상 보급을 달성하며, 중소제조업의 생산성(33.6%), 품질(44.4%), 매출(12.7%) 향상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많은 현장에서 “AI나 MES 시스템은 도입했지만 활용할 인력이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이러한 '활용 역량 부재'는 단지 사용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제조 전문 기술을 공급할 기업, 그리고 그 기술을 구현하고 운영할 인력이 함께 커나가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 고도화되어도 현장에서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기술과 사람이 함께 성장해야 진짜 변화가 일어난다.
◇스마트제조 기술 공급기업, '디지털 연결자'
국내 스마트제조 기술 공급기업 수는 10년 전 120개에서 2024년 기준 2460개로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MES, ERP, CPS, 제조AI 등 다양한 솔루션을 현장에 적용하며 제조혁신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그 수적 성장이 곧 질적 고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외산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다”, “적합한 솔루션을 찾기 어렵다”는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은 공급기업을 단순 납품업체가 아닌 제조혁신의 전략 파트너로 육성하고자, 공급기업의 경영·기술·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진단하는 역량진단 사업을 진행중이다. 향후 '스마트제조 전문기업 제도'를 신설하여 기술력과 사업 관리 능력을 갖춘 공급기업을 전문기업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공급기업 간 과당경쟁을 줄이고 역량기반의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또한 공급기업의 성장단계에 따라 창업, 기술개발, 해외진출까지 전주기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여 초기 창업을 위한 초격차 스타트업 육성, 기업 간 공동 R&D, 글로벌 전시회 참가, K-혁신사절단 파견, ODA 연계 등 공급기업이 기술 중심에서 산업 주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7대 전략분야(제조AI, CPS/디지털트윈, 생산관리시스템 등)를 중심으로 기술 수준과 전략적 중요도에 따라 각 분야별로 전략기술 로드맵과 표준화 체계를 수립하고 있다. 이는 단순 기술 보급을 넘어 산업 생태계를 정밀하게 설계하고 강화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이다.
◇인력 양성, 선순환 구조의 출발점
문제는 이 모든 계획이 '준비된 인재' 없이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특성화고, 대학, 대학원에서 스마트제조 관련 학과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실무역량을 갖춘 인재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급기업은 신입 채용을 꺼려하고, 학생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한다.
스마트제조혁신의 성공을 위해 인력양성은 공급기업 육성만큼 중요한 정책의 또 다른 축이자 생태계 순환의 출발점이다.
정부는 스마트제조 분야 국가기술자격 제도를 신설하여 산업계가 검증된 인재를 채용할 기준을 제공하고, 교육기관은 표준화된 커리큘럼을 구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도록 지원한다. 자격시험을 통해 기술력을 검증받은 인재는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고, 기업은 더 이상 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또 다른 자격증만 양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자격제도는 산업계가 직접 커리큘럼 설계와 시험 출제에 참여하며, 기업과 교육기관 간 연계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금번 자격 신설 제도 운영을 통해 교육에서부터 자격검증, 채용, 현장적용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촘촘히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실무 중심의 교육도 강화할 예정이다. 중소기업 특성화고 및 기술사관 프로그램을 통한 기업 맞춤형 교육과정 편성 및 협약기업 취업 연계, 대학과의 협력을 통한 산학연계형 스마트제조혁신 아카데미 개설, 중소기업 계약학과 내 스마트제조산업 관련 교육과정 확대 등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확장할 예정이다.
◇스마트제조의 생태계 조건
공급기업, 인재, 정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진정한 스마트제조혁신 생태계가 작동한다. 공급기업은 기술력과 실적을 기반으로 전문기업으로 지정되고, 다층적 지원을 받는다. 인재는 교육과 자격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고, 다시 이들의 역량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정책은 이 전 과정에 걸쳐 인센티브를 설계하고, 시장과 기술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개편된다.
이러한 스마트제조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공급기업 육성과 인재양성은 더 이상 단기 과제가 아닌 산업을 전환하는 국가전략으로서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마트공장을 도입하는 도입기업 뿐만 아니라 공급기업에게도 공식적인 법적 지위와 보호체계가 필요하고, 일관성 있는 인재양성을 위해서 특성화고-대학교-대학원-현장 간 연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정부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은 이런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고 스마트제조 생태계 전반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칭 스마트제조산업 육성법 혹은 스마트제조산업 혁신법)를 마련하고 있다.
이 선순환 구조는 단순히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제조업의 활력 회복, 대한민국 제조 경쟁력 강화라는 보다 큰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기술은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산업의 성과로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우리가 기술 강국에서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정예화된 공급기업, 실전형 인재,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법제화를 포함한 정책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안광현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단장 kwanghyn.an@gmail.com
〈필자〉
민간기업인 현대자동차에서 공공기관인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부설)으로 자리를 옮겨 중소기업의 AI 스마트제조혁신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1990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2020년까지 30년 동안 생산공장관리, 영업마케팅, 사업기획업무를 폭넓게 경험하였으며, 재직 중 수소상용차중국진출TFT장 상무, 해외공장관리팀장, 미국주재원을 역임하였다. 2022년 스마트제조혁신 추진단장으로 부임하여 중소기업 스마트제조혁신을 통한 제조현장의 디지털 전환, 제조데이터 수집 및 AI 활용 기반을 선도하는데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