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한국이 낙원입니까” 썩은 탈북자 시신, 그 옆 성경엔…

2025-06-30

어느 119구급대원의 고백

삼촌은 가족을 버렸다.

무척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그 똑똑함이 결국 화를 불렀다.

서울의 봄 이후로 삼촌은

대한민국에 염증을 느낀 것 같았다.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끼고 살던 삼촌은

그 책에서 희망을 보았고,

데모를 했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찾아

어느 봄날 홀로 월북을 했다.

그때 삼촌에겐 두 아이와 아내가 있었다.

다시 삼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건

20년이 지난 뒤였다.

브로커를 통해 삼촌으로부터

전달받은 편지엔 누이(우리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달러를 가능한 한 많이

환전해서 보내달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사진도 한 장 같이 왔다.

새장가를 간 삼촌, 새 아내, 두 아들.

하나같이 살집은 없고 뼈에

거죽만 겨우 붙여 놓은 모습이었다.

엄마는 삼촌에게 오천 달러를 보냈고,

더 이상 편지는 오지 않았다.

처음 그 남자를 보았을 때 삼촌이 떠오른 건

월북을 하던 즈음의 삼촌과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가 희망을 좇아 휴전선을 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남에서 북이 아니라

북에서 남으로 이동했다는 점은 달랐지만.

‘새터민’이라 부르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 삼촌과 닮은 남자, 그가 죽었다

구도심 어느 언덕배기 꼭대기에

위치한 구식 아파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은 입구에

그 남자는 매일 취해서 누워 있었다.

비쩍 마른 얼굴과 몸이

그 옛날 사진 속 삼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지금까지 수십 차례,

출동 나갈 때마다 꼭 같은 자리에

누워 있는 걸 보고

그가 중증의 알코올중독일지언정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했다.

아마도 밤눈이 어두운 누군가가

차를 몰고 귀가하는 길에

자기를 밟고 지나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이곳 주민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서

아파트 입구를 지날 땐 항상

아래를 살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를 만날 때면

늘 질긴 목숨을 이가 아프도록 씹으며

오래오래 살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엊그제 내려온 출동 지령이

거짓말처럼 느껴진 까닭도 거기에 있다.

“사람이 죽은 것 같다. S아파트 717호.”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