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텍사스주 커 카운티에 발생한 홍수로 10일(현지시간)까지 최소 121명이 사망하고 161명이 실종됐다. 엄청난 인명피해로 인해 책임 소재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에서는 '인공강우 실패로 벌어진 참사'라는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 4일 커카운티를 강타한 폭우로 인해 이 지역 과달루페강 수위는 90분만에 6~8m가량 치솟았다. 사람들이 미처 대피하기도 전에 홍수가 마을을 덮치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올해 폭염에 이어 미국을 강타한 두 번째 기상 재해다.
경보 시스템 미비 등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인공 강우가 이번 사태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조지아주 하원의원(공화당)은 엑스(X · 옛 트위터)에서 “기상 변형 문제를 다루는 법안을 발의하겠다”며 “날씨, 온도, 기후, 또는 햇빛 강도를 변경하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화학) 물질 등을 대기 중으로 주입하거나 방출하는 것을 금지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그린 의원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전 자문의원인 마이클 플린 등 여러 정계인사들이 인공 강우가 이번 폭우를 유발했거나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주장과 달리 기상학자들은 인공 강우가 이정도로 단기간 대규모 폭우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인공 강우는 항공기로 구름 사이에 구름씨(Cloud seed)를 뿌려 인공적으로 비나 눈을 내리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아직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고 국지적이라 이번 폭우같은 효과를 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밥 라우버 일리노이 대학교 대기과학 명예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이번 폭풍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구름 씨뿌리기(Cloud seeding)로 만들 수 있는 양이 아니”라며 “자연적인 과정에 (구름 씨는) 아주 미미한 증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텍사스 휴스턴의 기상학자 트래비스 헤르조그도 현지 매체 달라스 익스프레스에 “구름 씨뿌리기가 이 정도 규모의 폭풍을 만들 수는 없다”며 “이름이 '구름 씨뿌리기'일 뿐 단 하나의 구름도 만들 수 없다. 기존 구름을 이용해 강우량을 최대 20%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과학 전문가들의 반박에도 인공강우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폭우를 일으킨 폭풍이 접근하는 시기와 한 인공강우 업체가 텍사스주에서 진행한 구름 씨뿌리기 작업 시기가 겹치면서 음모론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지난 2023년 설립돼 미국 전역의 여러 주와 협업하며 가뭄에 대처하고 있는 인공강우 스타트업 레인메이커는 폭우와 관련해 원망의 대상이 됐다.
오거스터스 도리코 레인메이커 최고경영자(CEO)는 텍사스주 홍수가 발생한 이후 회사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혼란스럽지만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어느정도 예상했다”며 “전 세계 어딘가에서 심각한 기상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한다”고 토로했다.
레인메이커는 홍수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2일에는 단발 엔진 비행기를 이용해 텍사스주 커 카운티에서 남동쪽으로 160km 떨어진 카네스 카운티의 런지 지역 상공에서 구름 씨뿌리기 작업을 진행했다. 약 20분 동안 비행기를 이용해 70g 정도의 아이오딘화 은을 두 개 구름에 살포했고, 이를 통해 가뭄이 든 농장에 0.5cm 미만의 비를 내렸다.
도리코 CEO는 “해당 작업은 수자원 관리 지구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비영리 단체와 체결한 계약의 일부”라면서 “작업 얼마 뒤 기상학자들이 폭풍 전선이 접근하고 있다고 알려 작업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재해의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는 목소리에 좌절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인공강우 기술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규제와 감독, 투명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