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선장님, 배 몰고 태평양 건넜다…'바다 테슬라' 노리는 K조선

2025-05-19

무섭게 크는 글로벌 자율운항선박 시장

◆망망대해에 웬 자율운항?=선원 등 사람의 개입이 전혀 없거나 최소한의 개입으로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의해 스스로 운항하는 자율운항선박.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5년 544억 달러(약 70조원)였던 자율운항선박 시장 규모는 2030년 2541억 달러(약 33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자율운항선박은 왜 필요한걸까. 업계에서는 “사고도 줄이고, 운항의 경제성도 높일 수 있다”고 자율운항선박 도입 필요성을 설명한다.

해양 사고 대부분은 인적 과실 때문이다. 독일 보험회사 알리안츠(AGCS)분석에 따르면 해양 사고의 75~96%는 사람의 실수에서 비롯된다. 조선업계는 AI 기반 시스템이 선원의 인지 능력을 보완해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부족한 노동력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국제해사회의(ICS)는 2021년 보고서에서 202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선원이 약 9만 명 부족할 거로 예측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전쟁 전까지, 양국 선원이 전 세계 해운 노동력의 약 15%를 맡았기 때문이다.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전체 선원 중 약 70%가 50세 이상이다.

경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공지능(AI)이 최적의 항로와 속도를 제안해 연료 사용량을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량도 낮출 수 있다. 국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달 5000t 이상 선박의 연료 집약도 기준을 강화한 온실가스 감축 중기 조치를 승인했다. 자율운항 기술을 활용하면 연료를 아끼고, 탄소세 부담도 줄이는 ‘일석이조’다

◆“여기가 선셋포인트” 모셔준다=전문가들은 인지·판단·제어 기술은 기본이고, 바다 환경에 특화된 인간 선장의 직관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AI 선장에게 배를 믿고 맡길 수 있다고 한다. 현재의 기술 수준은 사람의 한계를 보완하고 그 역할을 덜어주는 정도다. 자동차의 ADAS 같은 개념으로, 선박 적용률은 5% 미만으로 추산된다.

자율운항선박 기술 핵심은 ‘충돌 회피 기술’이다. 이를 위해 기존 레이더 외에 광학 및 적외선(IR) 카메라가 함께 쓰인다. 야간·해무 상황 등 가시성 낮은 조건에서도 24시간, 빠르고 정확한 물체 인지를 위해서다. 특히 고래나 빙하를 마주하는 ‘예외 상황’은 데이터가 적어 시스템이 학습하기 쉽지 않다. HD현대의 자율운항선박 자회사 ‘아비커스’는 생성 AI로 빙하, 고래 등을 마주하는 케이스를 모사하고 시스템에 학습시킨다.

항해에도 ‘콜레그(COLREG)’라는 충돌예방규칙이 있다. 자율운항선박 회사들은 콜레그 학습은 물론, 충돌 회피 알고리즘을 개발해 선박의 속도와 항로를 고려한 최적의 회피 경로를 제안하고 충돌을 피한 후 원래 항로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한다. 현재는 도선법에 따라 국제 항해에 투입되는 총톤수 500t 이상의 선박은 도선사의 지시에 따라 부두에 정박해야 한다. 배의 ‘발렛파킹’을 도선사가 맡는 셈이다. 자율운항선박 기업들은 서라운드뷰 모니터링(SVM) 시스템을 통해 도선사를 보조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아비커스가 출시한 레저보트용 솔루션 ‘뉴보트(Neuboat)’는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특정 시간에 해가 가장 아름답게 지는 지점으로 보트가 자동으로 데려다주거나, 특정 계절에 감성돔이 가장 잘 낚이는 포인트를 추천해 주는 기능으로 확장하는 식이다. 군함은 자율운항시스템을 선제 개발해온 대표적인 분야다. 최근에는 기술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방산 분야 진출과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에는 블루워터오토노미, 사로닉, 안두릴 인더스트리 등이 유명하다. 국내 스타트업 ‘씨드로닉스’는 싱가포르 국방과학기술청과 무인수상정(USV)을 공동 개발한다.

◆기업이 끌고 정부가 밀고=국내엔 ‘조선 3사’인 현대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특히 HD현대 자회사 ‘아비커스’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 아비커스는 상선용 솔루션 브랜드 ‘하이나스(HiNAS)’를 운영한다. 임도형 대표가 7명 규모 사내 벤처로 시작해 5년 새 직원 100명 규모로 성장했다. 2023년부터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하는 모든 선박에 아비커스의 인지·판단·제어 시스템 ‘하이나스 컨트롤’이 탑재된다. 2022년엔 ‘프리즘 커리지호’로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으로 대양 횡단에 성공하기도 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1월 자율운항 연구 선박 ‘시프트 오토’를 출항하고 실증에 돌입했다. 한화오션은 2021년 자율운항시험선 ‘한비’를 개발하고 해상 시험을 실시했다. 스타트업도 있다. ‘씨드로닉스’는 201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박별터 대표가 창업한 자율운항선박 기술 스타트업이다. 3월에는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도 유치했다. “이제는 AI 운항의 시대가 왔다는 걸 투자업계도 인정한 것”이라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020~2025년까지 총 사업비 1603억원을 들여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사업(KASS 프로젝트)을 진행하고, 후속 사업을 논의 중이다. 올해 1월부터는 ‘자율운항선박법’을 시행해 정책 추진 근거를 마련했다. IMO가 도입 준비 중인 자율운항선박 국제 규정 ‘마스 코드’(MASS Code)에 한국 기업 기술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대응을 강화한단 계획이다.

◆‘완전 무인자율운항’은 언제쯤=치열한 기술 개발 경쟁에도 완전한 ‘무인’ 자율운항선박 시대는 아직 이르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자율주행차처럼 사고 시 법적 책임, 보험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자율운항선박 안전 운용을 위한 기술 기준인 MASS(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 Code(마스코드)가 강제 발효되는 2032년을 자율운항선박 기술의 분기점으로 본다. 전 세계에서 기술 경쟁 중인 기업·국가가 자신의 기술이 마스코드에 반영될 수 있도록 부단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 “K자율운항 라이벌은 유럽·일본·중국”

연구원에서 사내벤처, 자회사 대표로. 5년째 아비커스를 이끄는 임도형(사진) 대표는 “기술이란 게 1년 새 눈에 띄게 도약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상용화에 대한 부분, ‘실제 사례’에 등은 어느 회사보다 아비커스가 가장 많이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비커스만의 강점이 무엇인가.

“데이터 리더십이다. 시작할 땐 조선 3사 수준이 고만고만했지만 아비커스 설립 이후 HD현대의 속도가 남달라졌다. 지난해 말부터 ‘인지·제어·판단’이 가능한 토털 솔루션을 30건가량 선박에 설치했고, 현재 그 배들이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솔루션을 상용화한 건 국내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처음이다.”

주목할 자율운항선박 기술 회사는?

“유럽 업체들이나 ‘메구리204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일본은 IMO 마스 코드 도입에 맞춰 주요 해운사 등 산업계 플레이어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도 곧 후속 사업을 논의할 텐데, 국책 과제 등에서 대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중국도 자율운항선박 기술에서 영향력이 있다. 자율운항선박은 조선·해운뿐 아니라 기자재 업체 등에도 기회가 될 시장이다. 한국 산업계에 유리하도록 마스 코드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