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이별기

2025-06-17

나는 석탄과 인연이 깊다. 아버지가 연탄 공장을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땐 별명이 ‘깜씨’였고 언니들은 연탄이 아니었으면 고등학교만 졸업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다행히 딸 여섯이 모두 대학 교육을 마쳤으니, 석탄 산업이 나라 살림만이 아니라 우리 자매까지 살린 셈이다.

그런데 마지막 국영 탄광인 도계광업소가 곧 문을 닫는단다. 남은 것은 민영 탄광인 상동 광업소 정도라니 석탄으로 대변되는 아버지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같다.

조선 시대에 석탄을 원료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근대적 장비를 갖춘 석탄 채굴은 20세기의 산물이다. 1903년 평양 광업소가 그 시작. 이후 일제 강점기 때의 수탈을 거쳐 해방 이후에도 경제 개발을 위한 중심 에너지원은 오랫동안 석탄이었다. 안전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사북탄광 노동항쟁을 비롯한 갈등과 갱도 매몰 등 대형 사건이 늘 따라다녔으니, 탄광촌은 한국적 근대에 빛을 준 성소이자 말 그대로 ‘막장’ 이었다.

한국의 창작극 역시 그 어둠을 의식하곤 했다. 윤대성의 ‘출세기’와 이강백의 ‘쥬라기의 사람들’, 윤조병의 탄광촌 삼부작 등 선배 극작가들은 한국적 근대를 이끈 역군이지만 늘 뒷전으로 밀려났던 광부들에 대한 미안함과 세상의 폭력성을 극화하곤 했다.

특히 윤조병 선배는 탄광 지대를 답사하고 사북이 있던 정선에서 선탄부와 운반부로 20여일을 일한 뒤 ‘모닥불 아침이슬’ ‘풍금소리’ ‘초승에서 그믐까지’의 삼부작을 집필했다고 한다. 정의를 입 밖에 내기도 힘들었던 시절, 그것은 어떤 결기였을까.

오늘 문득 엄격한 가장이라 참 반항도 많이 했던 작고하신 아버님이, 이제 꼰대 세대로 후배들에게 지칭되곤 하는 선배들이 그립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비난받는 석탄아, 그동안 수고했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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