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담장 틈마저 막는 대북 라디오 방송 중단

2025-08-07

북한은 아직 개방된 사회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2020년대 초까지만 해도 평양의 엘리트층은 알음알음 외부의 뉴스와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평양 주재 외교관, 유엔 직원이나 비정부기구(NGO) 인사들을 통하는 방법이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2021년 3월을 기점으로 모든 NGO와 유엔 직원은 평양에서 철수했고, 같은 해 10월 모든 평양 주재 외국 공관 직원들도 떠났다.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 차단 북한

효과적 정보 유입의 문은 라디오

방송 중단하면 북한 변화 어려워

그들이 떠난 후에도 사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면 해외에서 밀반입된 USB 영상이나 해외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이마저도 최근엔 두 가지 이유로 정보 접근이 막혔다. 첫째, 북한 당국이 이러한 외국 정보 입수나 공유를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2020년 11월에 도입된 뒤 2022년 8월에 더 강화된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통해 외국 관련 정보나 시각을 들여오거나 공유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특히 일부의 경우 사형도 가능하다. 2006년 도입돼 2015년과 2023년에 강화된 전파관리법은 외국 방송 수신 기기 소지를 금지하고, 모든 무선 설비는 당국의 테스트를 거쳐 소지하되 조선중앙TV만 수신할 수 있다. 구매한 지 10일 이내에 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위반하면 최장 3개월간 강제 노동수용소에 수감된다. 보안 절차도 강화돼 USB 등 외부 정보 밀반입이 더욱 어렵고 위험해졌다.

둘째 이유는 외부 세계의 북한 대상 방송이 대거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라디오(RFA) 같은 기관의 상위 조직인 미국 국제방송처(AGM)의 예산 지원을 끊으면서 두 방송의 송출이 중단됐다. 7월 초에는 한국 국가정보원이 운영하는 북한 대상 4개 라디오 채널과 1개 TV 채널도 송출을 중단했다.

이런 조치에 따라 북한으로 송출되던 방송의 80%가 사라졌다. 이 방송들은 여러 주파수를 활용해 송출됐기에 북한 당국의 전파 방해가 어려웠다. 이제 북한 주민이 외국 방송을 가장 많이 듣는 시간대인 밤 11시에 북한 당국은 기존 25개 주파수에서 단지 6개 주파수만 차단하면 된다. 여력이 생긴 북한 당국은 그동안 묵인했던 KBS 한민족방송과 한국 통일부의 자유의소리방송 전파 차단에 나섰다.

이제 남은 외국 방송 송출은 BBC코리아의 한국어 방송이다. 미국 민주주의 기금(NED)이나 미국 국무부로부터 대부분의 예산을 지원받아온 한국 민간 라디오 방송국도 대북 방송을 계속 송출하고는 있지만 얼마나 지속할지 의문이다. 일부 기독교 단체도 북한으로 종교·뉴스·음악을 담은 방송을 송출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북한 주민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북한 당국과 다른 시각이나 정보를 구하기 훨씬 더 어려워졌다. 이는 실로 중대한 문제다.

USB 드라이버는 상대적으로 몰래 북한으로 반입하기가 용이하다. 북한으로 정보를 넣기에 이보다 유용한 방법은 없다. TV도 효과적이지만 방송 채널이 제한적이다.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사는 북한 주민이나 TV를 가진 주민만이 한국의 방송을 수신해 시청할 수 있다. 그러나 라디오는 북한 전역에 송출이 가능하고 어떤 방송이든 무제한 청취가 가능하다. 통신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지만, 폐쇄된 북한사회에 가장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하는 방법은 여전히 구식 라디오다.

동유럽의 폐쇄 사회가 문호를 개방했을 때 당시 동유럽 당국은 외부 방송을 시청·청취하는 인구 규모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북한사회에서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 인구가 소수일지는 몰라도 그 규모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클 수 있다는 말이다. 폐쇄된 사회에서 외부 정보에 접근하게 되면 이를 주변과 나누는 승수 효과가 발생한다.

사회를 바꾸는 데 이러한 정보의 전파가 얼마나 중요한지 동독·폴란드·소련의 역사적 경험이 잘 말해준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이 제대로 된 외부 정보를 입수하는 것은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제대로 된 정보는 조율의 힘과 비이성을 억제하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대북 방송 송출 중단 조치는 북한의 개혁·이성·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후퇴시키는 조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