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은 집에서 수백 또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까지 가서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째서 집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지 못하는 걸까?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멀리까지 가서 자세히 살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미에서 집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는 적어도 한 고장에서 오래 살아서 정확하고 유익한 관찰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박영숙 엮음, 『소로의 문장들』 중에서.

『월든』 『소로의 일기』 등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여러 책과 서한문을 엮은 책이다. 자연 속에서 ‘건설적 고독’과 함께 살았던 소로에게 움직이고, 걷고, 여행하는 일은 사유의 출발이었다. “일어서서 살지 않으면서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내 생각이 흐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가장 심오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란 가장 멀리 여행한 사람”이라고 썼지만, 당연히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집 밖을 나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서 헛간 안을 오가는 사람보다 하늘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고 시선이다. “공정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여행자는 가장 오래된 거주민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나는 관찰자가 언제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언제나 호(弧)의 중앙을 향해 서 있다. 하지만 수많은 언덕에서 수많은 관찰자가 자신과 똑같이 유리한 위치에서 해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 못한다.” 우리는 늘 자기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 또한 자신이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간과한다는 얘기다. 본질은 각자가 똑같이 자기에게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뿐이다. 나만, 우리만 옳다며 불통하는 현실이 겹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