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의 과도기가 길어지며 기획재정부 수장이 공석인 가운데, 각종 경제 정책을 조율하는 ‘경제 사령탑’의 부재가 현실화하고 있다. 경제부총리의 빈자리는 단순한 자리 비움 그 이상이다. 대외 협상은 물론 국내 민생 현안까지 표류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4일 “경제부총리 직위의 공백에 따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김범석 제1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으로서 조직을 이끌겠지만, 범부처 조율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김범석 장관 대행은 지난 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 집행, AI 지원, 건설경기 대응 등 당면한 경제 현안들을 언급하며 “흔들림 없이 업무를 수행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부처 간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 체계는 불가피하게 흔들릴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경제 부처 간 정책을 조율하고 메시지를 통일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경장)의 운영이 불투명해졌다. 경제부총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회의 개최 자체가 불안정하고, 설사 열리더라도 정책 리더십의 공백으로 인해 실효성 있는 조율이 어려울 수 있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현실화된 가운데, 체감물가 관리나 내수 회복 등 시급한 민생경제 현안에 대한 대응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또 다른 당국자는 “6월 초 대선까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다룰 사안들이 남아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일정조차 확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외교 무대에서도 공백의 여파는 감지되고 있다. 미국발 관세 압박,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에 대응하던 ‘대외경제장관회의’(대경장)나 ‘대외경제현안간담회’ 역시 일시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정부의 대외 협상 채널이 사실상 정지된 셈이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워싱턴DC에서 협상을 벌였던 미국 재무부도 한국 경제부총리의 공백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전했다.
김범석 직무대행은 지난 2일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에 참여해 분위기 수습에 나섰지만,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간의 ‘투톱 리더십’ 체제는 이미 약화된 모습이다.
외교부·기재부 공동으로 준비해왔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의 한·일, 한·인도 재무장관 회담도 줄줄이 취소됐다. 이번 주 개최되는 아세안+3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일정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흐려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제부총리의 부재는 결국 차기 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책 연속성 확보와 대외 신뢰도 제고를 위해 하루빨리 사령탑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