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한 중소기업이 자사 기술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특허심판 일부를 승소했지만 비용 부담으로 항소를 포기하고 조건부 합의에 이른 사실이 확인됐다. 영세기업이 몰려 있는 신발업계에서는 “기술을 인정받고도 실익을 거두지 못한 사례”라며 지식재산권(IP) 보호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발 부품 제조업체 ‘아이무브’는 최근 특허심판원에서 기능성 신발 제조·판매업체 S사와 주고받은 5건의 심판 중 3건을 승소하며 자사 기술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으나 항소심 대응 비용이 부담스러워 상호 조건부 합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결과만 보면 기술적 우위를 인정받은 셈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무브는 심판 단계에서만 변리사 보수 등으로 8000만 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기업인 만큼 항소심까지 가면 연 매출의 상당 부분을 써야 할 상황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번 특허 분쟁은 보행 시 발생하는 충격과 자력을 활용해 신발 내 미세 진동을 생성하는 진동 단자 관련 기술을 두고 벌어진 것으로 수년에 걸친 독자 개발 끝에 완성된 아이무브의 핵심 기술이다. 심결이 최종 확정되면 S사는 진동 단자가 포함된 신발을 사실상 생산하기 어려워진다. 이 같이 유리한 상황속에서도 아이무브는 본격적인 소송으로 상황을 이끌어가지 않고 조건부 합의로 소송을 종료했다. 기술은 지켰지만 시장 수성에는 실패한 상황이 된 셈이다.
S사는 국내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해 조직적인 대응에 나선 반면, 아이무브는 심판 단계부터 과도한 시간과 자금 소모에 시달려야 했다. 대표가 직접 서류 작성부터 증거 수집, 변리사 대응 조율까지 도맡았다. 김상구 아이무브 대표는 “법적 절차를 지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라며 “지금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특허를 내고도 비용 부담 등으로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포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이슈와 관련해 기술 기반 중소기업의 IP 등 관련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호받기 힘든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IP 전문가는 “특허는 등록보다 실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중소기업은 1심에서 승소하더라도 소송 체력 부족으로 권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사례가 단순 개별 기업의 이슈가 아닌 관련 법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일각에서는 특허심판원에서 기술 권리를 인정받고도 비용 부담으로 적극적인 방어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중소기업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지킬 수 없는 특허’라는 회의론까지 확산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등록만 해주고 지킬 수 없게 놔두는 특허는 껍데기”라며 “법률 비용 등 규모 싸움에서 밀리는 영세기업의 기술을 빼앗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중소기업의 특허출원 건수는 전년과 비교해 2.2% 감소하는 등 중소기업의 특허 확보 열기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반면 대기업의 지난해 특허출원 건수는 전년 대비 12.3% 증가했다.
특허청과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IP 컨설팅, 분쟁 조정 서비스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심판·소송 단계에서의 실질적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소송보험 도입, 공공 변리사 제도, 지자체 연계 IP 법률지원 기금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부산중소기업단체 관계자는 “IP는 단순히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분쟁에서 방어할 수 있는 여건까지 보장돼야 진정한 보호”라며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시와 부산경영자총협회는 이 같은 소기업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IP 분쟁 지원 제도 마련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재환 부산경총 본부장은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기금 조성이나 기업 자부담 최소화 방안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제회 설립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상시 보호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 건의와 사업 기획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