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민은 초등학생 남자아이다. 동급생 여자아이의 얼굴 합성물을 만들고, 그 영상을 보며 히죽거린다. 어느 날 재민은 우연히 ‘사이버 레커’ 유튜버의 영상에 출연하게 되고, 유튜브에서 ‘멸공재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다. 재민은 실제로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편집된 영상의 피해자가 된다. 재민이 만든 딥페이크 영상이 문제가 되자 “장난으로 그 여자애가 좋았는지 합성을 한 거다. 애들 장난인데 하여튼 유별나다”고 하던 재민의 엄마는 아들이 피해자가 되자 강경한 법적 대응을 시작한다.
공포에 질린 재민은 자신이 딥페이크로 합성했던 동급생을 만나는 꿈을 꾼다. “사람들이 널 좋아해서 장난으로 그러는 거야.”, “그걸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같은 말을 듣는다. 재민은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린다. 이기심, 후회, 죄책감이 뒤섞인 채 영화는 끝난다.
딥페이크 가해자 아동의 심리를 다룬 애니메이션 단편영화 <재민이>의 내용이다. 이 영화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과 텀블벅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7월부터 약 두 달간 진행된 펀딩은 목표 금액의 135%를 채웠다. 펀딩을 주도한 여성 영화감독들의 모임인 여성감독네트워크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여성 대상 폭력을 목격하면서 출발한 작품”이라며 “기술이 여성을 침묵시키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카메라를 통해 함께 말하고 기록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텀블벅 후원자 대상 상영회에서는 50여명의 관객이 숨죽여 영화를 지켜봤다.

영화가 상영되는 10분 동안 객석에서는 한숨과 웃음이 교차했다. 재민의 엄마가 딥페이크 범죄를 가벼운 일로 취급하는 장면에서는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멸공재민’, ‘깨어있는 청소년’과 같은 자막이 붙은 익숙한 ‘레커 유튜브’ 썸네일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영화는 ‘동물 애니메이션’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영화를 연출한 염문경 감독은 어린이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딥페이크를 재현해야 한다는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이 출연하는 애니메이션을 택했다고 했다. 재민이 동급생 토끼를 딥페이크로 합성하는 것은 토끼와 문어를 합성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다만 현장에서는 이 점 때문에 딥페이크 문제의 심각성이 덜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GV에서 “딥페이크 합성은 ‘합성인지 모르게 만드는 것’인데 AI 합성물이 나오는 부분에서 딥페이크와 거리가 멀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GV에 참여한 관객들은 가해자 아동의 심리를 잘 그려냈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해자가 딥페이크 합성물 제작을 ‘가벼운 일’로만 느꼈다가, 자기 일이 된 뒤에야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는 점을 잘 다뤘다는 것이다. 청소년센터 강사라고 밝힌 한 관객은 “청소년들은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고 코앞의 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청소년들에게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딥페이크는 실제로 10대 사이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는 문제다. 경찰청이 지난해 8월부터 7개월간 벌인 ‘허위영상물 범죄 집중단속’에서는 붙잡힌 가해자 963명 중 69.5%(5669명)가 10대였다. 14살 미만인 형사미성년자도 72명에 달했다. 권 소장은 이날 상영회에 앞서 열린 강연에서 “딥페이크는 ‘나’가 아닌 합성된 얼굴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으로 단속하기 어렵다”며 “딥페이크를 ‘비동의 포르노’로 개념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동의하지 않는 포르노는 명백한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재민이>는 인디스페이스에서 이달 22일 열리는 여성감독네트워크 상영회에서 다시 한번 관객들을 만난다. 그 밖의 공동체 상영 신청 및 작품 소식 등은 여성감독네트워크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감독네트워크는 “한 편의 영화로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지만 대화의 물꼬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연서 플랫팀 인턴기자 auue56@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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