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와이너리] 칠성사이다 BI·​패키지 리뉴얼, 톡 쏘는 '청량감' 아쉽다

2025-05-19

[비즈한국] 사랑하는 사람끼리 언제나 / 즐거운 곳에서는 누구라도 / 짜릿한 이 맛 칠성사이다 / 정다운 이 맛 칠성사이다 / 언제나 칠성사이다···.

1950년 출시된 칠성사이다는 70년 넘는 역사를 지닌 토종 탄산음료다. 칠성사이다의 베스트 CM송을 꼽으라면 구창모, 이선희가 1980년대 중후반에 부른 버전을 꼽고 싶다. 웅장한 편곡과 시원하게 뻗는 보컬이 사이다의 청량함과 잘 어울린다. 이 CM송은 2020년 리메이크되어 그 시절을 지나온 세대에겐 추억을, 새롭게 접한 세대에겐 신선함을 선사했다. 30년 넘은 과거 유산을 활용했지만, 낡게 느껴지지 않았다.

칠성사이다의 초창기 심벌은 ‘칠성(七星)’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큰 별 주변에 6개의 작은 별이 나열된 것이었다. 브랜드 컬러인 녹색이 캔에도 본격 반영된 것은 1970년대 초로 추측된다. 이후 신선한 이미지를 주는 녹색과 흰색의 조합을 고수했고, 1987년 한글 심벌을 포함한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신했다. 통일된 디자인 없이 두꺼운 고딕으로 쓰이던 로고타입도 이때 정비됐다(칠성몰 홈페이지에는 1994년으로 표기됐지만, 잘못된 정보다). 2000년에는 전면 리뉴얼을 통해 BI의 중심을 한글에서 영문으로 바꾸었다. 모두 우리 삶 속에서 희노애락을 함께한 디자인이다.

그런 칠성사이다의 모습이 지난해 말 다시 큰 변화를 맞았다. 롯데칠성음료가 칠성사이다의 BI와 패키지를 2000년 이후 24년 만에 리뉴얼하여 새롭게 선보인 것. 고유 상징인 별을 크게 키우고 로고타입을 별 중앙에 사선으로 배치하여 전체를 하나의 심벌로 만들었다.

새 BI 도입의 눈에 띄는 효과는 시스템 정립이다. 영문 ‘Chilsung’과 디자인을 맞춘 ‘칠성사이다’ 한글은 다시 ‘칠성사이다 제로’로 파생되고, 칠성사이다가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 ‘740 스트리트’ 로고를 보면 중앙의 큰 별과 그 위에 놓인 서체의 배열 자체가 하나의 템플릿으로 응용된다. 하나로 합쳐진 별·로고타입은 테이크아웃 컵부터 스태프의 앞치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이로써 본 BI와 관련 파생물의 시각적 연결성이 강화됐다.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은 요소를 단순화해 응집력을 높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플랫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글 비중이 낮아지고 그라데이션이 사라져 입체감이 줄었다. 예전 칠성사이다 병에 새겨진 수많은 별을 떠올렸을 때, 캔에 새겨진 7개뿐인 별은 어딘가 비어 보인다. 물론 별과 7이라는 두 개념을 BI에 직관적으로 통합하려면 불가피했겠지만, 허전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두꺼운 산세리프로 바뀐 로고타입은 문자열 ‘Chilsung Cider’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단순하게 묻어버렸다. 이로써 경쟁 제품 스프라이트와 비슷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칠성사이다가 따라가는 위치라면 몰라도, 독보적 1위인 입장에선 적절하지 않다.

어쩌면 차별화의 답은 브랜드가 거쳐온 시각물 속에 이미 있는 것은 아닐까? 1987년 서울그라픽센터(디렉터 권명광)에서 개발한 심벌은 한글 자음 ‘ㅅ’이 영문 ‘S’로 시각적 치환 가능한 점을 이용하여, 문자열 ‘칠성’을 지그재그의 강렬한 사선으로 처리함으로써 청량함을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은 한글을 메인으로 사용한 심벌로서는 최초라는 의미가 있어, 재해석해 선보이면 한국 청량음료의 근본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다. 영문으로만 가겠다면 2000년 버전처럼 ‘Cider’까지 다시 활용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칠성이 중요하긴 해도 사이다를 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직전 패키지가 20년 이상 지속된 것처럼, 미니멀하게 바뀐 이번 패키지도 일회성 디자인이 되지는 않길 바란다. 다만 차기작에는 톡 쏘는 개성을 한 모금만 더 첨가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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