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엘리트 체육 교육을 받은 중·고등학생 여자농구선수에게 목표와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다. 프로에 진출하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프로 선수가 될지, 아니면 농구를 포기할지 결정해야 한다. 많은 유소년 인재들이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일찌감치 농구공을 내려놓는다. 프로 전력 약화와 국제 경쟁력 저하, 여자농구 인재풀 감소가 끝나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국 유소년 여자농구선수의 수는 꾸준히 줄고 있다. 2025년 기준 전국 학교 운동부에 소속된 19세 이하 여자농구선수는 595명으로 10년 전(688명)보다 100명 가까이 줄었다.
여자농구 세대교체의 주역인 ‘슈퍼 가드’ 박지현을 배출한 서울 숭의여자고등학교 농구부는 2025년 등록선수가 없어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울산 화봉고등학교와 전남 법성고등학교는 최소 인원인 5명으로 힘겹게 농구부를 유지하고 있다.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 농구부의 올해 등록선수는 1명이다.
전문가들은 여자농구의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유소년 선수들의 이탈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혜 WKBL(여자프로농구) 해설위원은 “프로를 목표로 어릴 때부터 운동한 선수도 막상 프로 진출 이후 1~2년차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라며 “드래프트에 지원했다가 좌절했을 때 대학 진학 등의 다른 목표를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일찌감치 운동을 놓게 된다”라고 짚었다.
중·고등학교에서 엘리트 체육 교육을 받은 여자농구선수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프로 무대에 도전한다. 2025년 현재 5명 이상의 등록선수를 보유한 대학 여자농구부는 전국에 7개뿐이다. 대학 남자농구부(17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WKBL에서 최근 10개 시즌 동안 선발된 141명의 신인 선수 중 대학 재학 중, 혹은 졸업 후 선발된 선수는 29명에 불과하다. 2024~2025시즌에는 일본 교포인 홍유순과 이여명만이 대학 선수로 드래프트에 지원해 선발됐다.
김 해설위원은 “과거에는 서울이나 수도권에도 여자농구부가 많았어서 농구를 하는 여학생이 프로 진출 외에도 다양한 목표를 지닐 수 있었다”라며 “지금은 프로에 실패한 선수들이 대학에 간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고 프로에서도 대학 선수들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농구의 본토인 미국에는 대학농구가 크게 활성화돼 있다. 여자농구 스타 케이틀린 클라크가 아이오와대 재학 중이던 지난해 출전한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여자 농구 결승전은 평균 시청자 수 1870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5년 WNBA(미국여자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38명 중 35명은 NCAA 디비전1에 소속된 대학생 선수다.

한국에서도 대학 여자농구 활성화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2015년 창단한 부산대학교 여자농구부는 2024시즌 대학리그 전승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부산대 체육대학에 재학 중인 12명의 선수 중 일부는 프로 진출을 준비하고, 일부는 교직 이수 등을 통해 또다른 농구 인생을 도모한다.
김규정 부산대 농구부 지도교수는 “여자농구선수가 프로에 가지 못하거나 프로 인생이 끝났을 때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라며 “대학에 와서 다른 공부도 해 보고, 농구의 행정적인 면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WKBL에 따르면 2015~2016시즌 이후 은퇴(웨이버, 임의해지 포함)한 3년 차 이하 선수는 총 60명에 달한다. 이 중 12명이 프로 데뷔 1년 차에 은퇴를 선언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프로 진출을 선택한 선수들은 정착에 실패하고 튕겨져 나온다. 대학은 선수 수급난에 시달린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한국대학농구연맹은 2025년 여대부 선수 등록 관련 규정을 변경해 WKBL 출신 여자 선수들의 대학리그 참가를 허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여자농구에 대학 진학이라는 선택지가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엘리트 선수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저변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프로에서도 대학 선수들을 많이 뽑으면서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