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유료화하는 게 맞다. 유료화의 필요성과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로 검토 중이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의 유료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갑작스러운 주장은 아니다. 유 관장은 지난 7월 취임 기자회견은 물론 이전부터 꾸준히 유료화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 10월 28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유료화를 위한 사전작업인 ‘고객관리 통합시스템’ 도입 및 사전 예약제 도입을 예고했다. 이렇게 확보한 관람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년 중 공청회를 거쳐 관람료 수준, 도입 시기, 입장료 할인·면제 등을 결정해 본격적인 유료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민 다수의 문화 향유권을 위해 대부분 무료로 운영되는 현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과 세계적 추세에 맞도록 전시의 수준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유료화를 해야 한다는 측이 대립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으로 접근할 만큼 간단치 않다. 국중박의 올해 관람객이 사상 처음으로 500만명을 넘은 상황에서, 보다 수준 높은 전시문화 향유를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이슈가 되는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의 유료화는 엄밀히 말하면 ‘상설전시 재유료화’에 가깝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약 17년을 제외하면 국중박은 상설전시관 입장에도 2000원(2008년 기준)의 입장료를 받는 유료화 정책을 유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5월 국민의 문화 향유 증진을 위한다는 취지로 상설전시 전면 무료화를 시행했다. 국중박의 자체적인 테마전시 외에 해외 주요 박물관·미술관 등과 공동 주관하는 특별전의 경우 현재도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오는 11월 14일부터 열리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빛을 수집한 사람들’ 전시도 성인 기준 1만9000원의 티켓을 구입해야 볼 수 있다. 즉 기존 ‘상설전시 무료-특별전시 유료’가 결합한 모델에서, 현재 국중박이 추진하는 유료화가 실현될 경우 ‘상설전시·특별전시 모두 유료’ 모델로 바뀌는 것이다.

공식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하진 않았지만, 국중박을 찾은 관람객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은 유료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다. 국중박이 발표한 ‘2024년도 국립중앙박물관 고객만족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만족도는 88.9점으로 2018년(87.7점) 이후 대체로 꾸준히 상승해왔다. 방문객 수 역시 올해 1월부터 10월 15일 기준 500만명을 돌파해 지난해 동기 대비 약 70% 증가했고,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인기와 맞물려 ‘오픈런’ 현상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4일 오후 국중박 상설전시실에서 만난 관람객 박지혜씨(34)는 “국중박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이고, 서울에 온 김에 전시도 보고 선물을 살 겸 들렀다”며, 유료화와 관련해서는 “고궁 등에 갈 때도 몇천원씩 입장료를 내는데, 그 정도 수준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연 3회 정도 국중박을, 주 1회 정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는 김준기씨(47)는 “요즘 같은 때 박물관이 공짜라서 사람이 많이 온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수십만원짜리 뮤지컬은 n차 관람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라며 “주로 좋은 특별전이 있으면 박물관에 왔다가 겸사겸사 상설전시를 보는 편이라 현재도 무료의 체감이 그렇게 높진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료화와 관련해 일부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소액이라 하더라도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은주씨(31·가명)는 “서비스에 비용이 든다, 몇천원 정도도 못 내냐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 공공도서관이나 무료급식처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두고 그 비용을 정부가 부담할 수 있다”며 “유료화가 되더라도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이 이용할 수 있을지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복궁 등 주요 고궁은 성인 대상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청소년이나 노년층 등은 무료이고 매달 마지막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엔 전면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유료화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보기보다 거시적·장기적 관점에서 질 높은 전시문화 향유를 위한 구조를 어떻게 다져갈 것인가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물관 보는 법>,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등의 책을 쓴 황윤 작가는 전시의 ‘질’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황 작가는 “세계적인 박물관들이 양질의 기획전으로 경쟁력을 키우는데, 보통 큰 전시는 미국·유럽·아시아 주요 대도시를 순회하고 한국에는 제일 늦게 들어온다. 그마저도 예산이 적다 보니 A급 소장품은 제외된 전시가 많다”면서 “‘K박물관’이라 자화자찬하지만, 외국인 관람객은 여전히 얼마 되지 않는다. 양질의 전시 기획을 위해 충분한 예산 확보가 중요하고, 그 일환으로 유료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중박이 무료를 선언하면서 한국에서 사립박물관 운영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말이 계속 나왔다. 사람들이 유료인 박물관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관람객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걷는 것만으로 전시의 질이 담보되진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한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향후 국내 국립박물관·미술관 성장을 위한 핵심 요소 두 가지로 ‘독립성’과 ‘분리’를 꼽았다. 정부가 지원은 하되 운영이나 관장 임명 등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모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해외의 경우 대부분 관장 임명을 정부가 하는 게 아니라 민간이 결정하는 구조다. 이 경우 전문성을 지닌 관장이 10년 넘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며 “해외 박물관·미술관들은 수익 중 기부금이나 자체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한국의 국공립 시설들은 기부금 등의 수익금을 자체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국중박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화·전문화를 꾀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 대표는 “‘뮤지엄 피로(Museum Fatigue)’라는 용어가 있다. 지나치게 방대한 박물관에서 피로함을 느낀다는 것인데 현재 국중박은 선사시대 유물부터 도자기, 해외 미술품 등이 섞여 있어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한국이 도자기의 나라라고 하지만 국립도자기미술관 하나 없다. 국중박 쏠림 현상은 그만큼 국중박 말고는 갈만한 전시공간이 없다는 얘기라고 볼 수도 있다. 시대별·특성별 전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질을 제대로 담보하는 것 역시 대중의 문화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요소다. 과거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서 박물관 무료화를 추진했던 이보아 중앙대 예술공학부 교수는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박물관은 주입식 교육의 연장선 같은 고루한 느낌이 있었고, 이에 더 많은 사람이 친근감을 느끼게 하자는 차원에서 무료화를 추진했던 것”이라며 “현재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과거와는 달라졌고, 전시의 질적 차원도 중요하기 때문에 유료화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박물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문화적 소외계층을 위한 접근성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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