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청춘의 글로벌 고민들

2025-05-14

K팝은 글로벌 지향과 확장을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 온 산업이다. 초고속 인터넷과 SNS 등장, 미국 주류 시장 정체와 비영어권 문화에 대한 폭발적 관심 등 K팝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고, K팝은 유튜브와 틱톡 등 새로운 미디어를 등에 업고 세계를 사로잡았다. 내수 시장의 한계로부터 출발한 K팝의 불가피했던 글로벌 지향 전략은 결과적으로 기회가 됐고, 이제 K팝은 K를 지우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템플릿’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다다라 있다.

최근 두 번째 ‘완전체’ 앨범 로 돌아온 걸그룹 트리플에스는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이질적이고, 무모하리만치 대범한 그룹이다. 우선 24명에 이르는 가변적인 멤버 구성은 몇몇 고정된 멤버를 한 팀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으로는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팬들의 참여를 통해 활동 멤버와 유닛이 뽑히고, 이들이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트리플에스라는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산업적으로 보면 가능성과 확장성을 열어놓은 ‘모듈’화 전략의 일환이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 시대를 통해 개인 팬의 연대에 더 가까워진 K팝 팬덤의 욕망체계를 솔직하게 정체성이자 추진력으로 삼은 기획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트리플에스의 기획은 참신함과 무모함의 차이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K팝의 한국적 색채가 의도적으로 탈색되고 심지어 현지화 그룹의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서울’이라는 로컬의 정서와 이미지를 전면에 내건 트리플에스의 이야기는 더 대범하게 들린다. 물론 이는 확실한 음악적·미학적 차별화를 약속한다. 이들의 완전체 데뷔곡인 ‘Girls Never Die’는 힘든 현실에서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소녀들의 모습을 그린 곡으로 이미 K팝에서 소녀들의 성장과 연대, 힘과 주체성에 관한 찬가로 자리 잡았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깨어(Are You Alive)’에서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져 절망의 그늘 속에 가려진 세상의 소녀들에게 깨어나 꿈을 향해 달리자고 말한다. 주목할 부분은 그 주체가 이번에도 내가 아닌 ‘우리’라는 것.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승리와 자기애를 강조하는 K팝 트렌드와 달리 ‘연대’를 통한 극복에 방점을 찍은 트리플에스의 음악은 최근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정치적이며 투쟁 지향적인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저마다 다른 상처와 멍을 지닌 채 활활 타오르는 불을 사이에 두고 비장하기 그지없는 강한 몸짓을 나누는 뮤직비디오 속 소녀들의 모습은 마치 부족 공동체의 제의를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사방이 꽉 막힌 고층 아파트 사이의 작은 공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채 큰 몸짓으로 바람을 이겨내는(혹은 일으키는) 모습은 일상 속에 존재하는 억압과 투쟁의 관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라라라~”는 그 자체로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은 단어지만 이들이 노래하는 희망에의 염원을 담은 만트라가 아닐까.

트리블에스가 품은 현실적이면서 로컬적인 관심과 고민은 글로벌 시대 K팝의 중요한 서사가 될 수 있을까? 하나 생각해볼 것은 이미 우리의 관심사와 고민이 세계의 그것들과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서울은 이미 현대 사회의 모든 좌절과 모순이 응축된 가장 상징적 공간이며, 트리플에스가 노래하는 소녀들의 방황과 승리 역시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한 시대와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그리고 누구에게나 활용될 수 있는 서사의 틀이자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글로벌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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