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철도 신호시스템이 도입된 첫 모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향후 GTX를 비롯한 국내 전동차에는 모두 이 신호시스템이 적용될 겁니다.”
지난 24일 서울역 플랫폼에 바람을 가르며 들어서는 ‘2세대 KTX-이음’ 고속철을 가리키며 서정기 현대로템(064350) 국내사업단장은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13일 납품 완료된 2세대 KTX-이음은 2021년 도입된 국내 최초 동력분산식 고속철인 1세대 KTX-이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특히 현대로템이 국산화에 성공한 열차자동방호장치(ATP) 시스템이 탑재된 국내 첫 고속철로서 의미가 적지 않다. ATP는 앞차와의 거리, 선로 상태 등 정보를 실시간 파악해 안전 운행을 돕는 신호시스템으로 그간 유럽 제품에 의존해왔다.
공명상 현대로템 고속&SE 실장은 “신호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해외 엔지니어의 방문을 기다리고, 원인 파악 및 수리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면서 “유지·보수 비용도 상당했는데 국산화를 통해 이런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됐다”고 말했다.
2세대 KTX-이음에 실제 타보니 이전 모델과 비교해 진동과 소음, 승차감이 대폭 개선된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최대 시속 260km에 진입해도 흔들림이 거의 없고 조용했다. 현대로템은 이를 위해 차체의 주행·제동 기능을 갖춘 대차 부문에 성능이 향상된 서스펜션(완충 장치)을 설치하고, 차체 하부의 강도를 높이는 보강재를 추가했다. 또 객실 내에 전기를 공급하는 판토그래프(집전 장치) 주변에 설치되는 스테인리스강 차음재 면적을 넓히고, 천장에도 차음판을 추가했다.
현대로템은 2세대 KTX-이음 초도 물량을 당초 납기인 10월 31일보다 약 4개월 빨리 마쳤다. 오랜 기간 축적한 고속철 제작 역량과 생산 공정 효율화가 시너지를 낸 결과다. 공 실장은 “300여곳 부품업체와 공급망 관리, 프로젝트 매니징, 발주처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시험 검증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현대로템은 초도분을 시작으로 총 84량(6량 1편성)을 순차적으로 코레일에 공급한다. 납품된 2세대 KTX-이음은 코레일의 서해선과 동해선, 경강선(판교·원주) 등 4개 노선에 투입된다.
전세계 고속철 시장의 80% 이상이 동력 분산식인 만큼 KTX-이음 시리즈는 향후 해외 수출에서도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KTX-이음은 국산 고속철의 첫 해외 수출 사례인 우즈베키스탄 고속철 사업의 기반이 되는 모델이다. 시속 320km로 국내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KTX-청룡’ 역시 KTX-이음에 기반한 최신형 모델이다. 현대로템은 연말까지 시속 370km급 고속철 기술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한국의 고속철 기술 국산화율이 90%에 육박하는 가운데 해외 수주에 속도를 높이려면 기술 보호책이 촘촘하게 수립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정훈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은 “중국·일본과 달리 한국 고속철 시장은 해외업체들의 자유로운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며 “고속철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보호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