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오케스트라가 '으르렁'을…유럽 악단 최초의 K팝 공연 열린다

2025-05-14

“매 시즌 2~3개 정도의 미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오스트리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대표인 얀 나스트(60)의 말이다. 지난 3일 빈의 오케스트라 사무국에서 만난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활력 넘치는 예술 경영인이었다.

빈 심포니는 빈 필하모닉과 함께 이 도시의 양대 오케스트라다. 1900년 창설 당시 오페라 공연을 주로 하고 있던 빈필에 비해 시민 관객을 위한 오케스트라 공연에 주력하며 출발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에서 22년 동안 대표를 맡았던 나스트는 2019년 빈 심포니로 옮겨 오면서 개혁을 시도했다. 그 골자가 ‘한 시즌 2~3개의 미친 짓’이다.

거기에 K팝이 포함됐다. 빈 심포니는 내년 2월 16일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보아ㆍ엑소ㆍ에스파와 같은 K팝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편곡해 연주한다. 이 같은 내용이 들어간 내년 프로그램을 이달 발표했다. 엑소의 ‘으르렁’, 에스파의 ‘블랙 맘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을 연주하는 무대다. 나스트 대표는 “K팝을 정식 무대에서 공연 전체로 연주하는 최초의 유럽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곡들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지난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했다. 나스트 대표는 당시 서울에서 공연을 관람했고, 빈의 공연을 결정했다. 빈에 본사를 두고 공연 기획과 문화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WCN과 SM클래식스의 제안과 협력이 있었다. 나스트 대표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K팝 음악들이 클래식 음악의 어법으로 편곡돼 있어 우리도 공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빈 심포니의 K팝 공연은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빈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도시였고, 음악계도 그랬다. 서양 음악의 종주국이자 수도라는 자부심이 있다. 나스트 대표는 “음악의 수도이기 때문에 더욱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래식을 안 들어본 젊은 청중을 끌어들이는 일이 그의 사명이다.

K팝 콘서트에 앞서 나스트 대표는 영화 음악가인 히사이시 조 콘서트를 2023년 열었다. 클래식 음악 청중의 ‘성지’와도 같은 빈의 무지크페라인홀에서였다. “한 번도 클래식 공연장에 온 적이 없던 이들이 두리번 거리며 객석에 앉았다. 음악이 연주될 때 영상을 전혀 쓰지 않았지만, 청중은 이미 음악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슬프고 어떤 부분이 기쁜 내용인지를 알고 표정을 바꿨다. 놀라웠다. 이런 종류의 콘서트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스트 대표는 “K팝이야말로 새롭고 젊은 청중을 위한 최적의 장르”라고 했다.

나스트 대표는 K팝 콘서트에 대해 “빈 심포니가 처음 생겼을 때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했다. “1900년대는 20세기 음악의 혁신이 시작되던 때였고, 쇤베르크ㆍ베베른 같은 개혁 작곡가들의 음악이 연주되면서 빈 심포니의 음악회장에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빈 심포니의 K팝 공연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예술의 형태다.”

빈 심포니는 나스트 대표의 취임 이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길거리의 농구장에서 공연하며 청중과 즉석에서 함께 연주를 하거나, 객석의 모든 의자를 없애고 오케스트라가 그 자리로 내려가 청중과 섞여서 연주하기도 한다. 빈의 도심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 중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는 빈 심포니와 함께 팡파르를 연주할 기회를 준다. 이 팡파르는 마라톤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이달 31일에는 음악을 우주로 쏜다. 빈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200주년을 기념하는 ‘우주로의 왈츠(Waltz into space)’도 그 중 하나다. 나스트 대표는 “슈트라우스 2세의 ‘푸른 도나우 강 왈츠’를 스페인의 세브레로스에 있는 유럽우주국 안테나로 전송해, 거기에서 전자기파 형태로 우주로 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왈츠가 100년동안 우주에 남아있게 된다.” 여기에, 이 왈츠의 주제가 되는 음표들을 하나하나 판매하고 판매 증서를 액자에 넣어서 주는 기획까지 진행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에게 오케스트라 음악과 접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변화에 대해 처음에는 구성원의 반발이 심했다. “빈필 단원들은 매일 저녁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집에 가는데, 우리는 왜 공원에 가고 길에 나가야 하는지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5년이 되니 이제는 신뢰가 쌓여 믿고 함께 한다.” 그는 또 “중요한 것은 본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다음 시즌에 빈 심포니는 상임 지휘자 페트르 포펠카와 말러ㆍ슈트라우스 등을 연주하고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등 스타 독주자들을 초청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나스트 대표는 “K팝 콘서트를 한국에서도 공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