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6월 말 기준 우리은행(옛 한빛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 잔액은 6조 5134억 원으로 전체의 30.3%에 불과했다. 우리은행의 전신은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으로 기업금융의 대표 주자였다. 한일은 삼성그룹, 상업은 LG그룹의 주거래 은행이었다. 이 당시에는 신용대출 비중이 52%로 절반이 넘었다.
26년 뒤인 올해 6월 말 현재 우리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은 164조 9391억 원으로 비중이 55.1%까지 뛰어올랐다. 신용대출은 22.5%에 그쳤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은행 구조조정이 잇따르다 보니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절대시되고 안정적으로 자산을 굴리는 것이 핵심 가치가 된 결과다. 이 같은 부동산 대출 확대는 집값 상승과 맞물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금융 당국의 판단도 비슷하다. 당국 내부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융계에 충당금 규정 강화와 여신 관리 및 부실 금융사 구조조정을 주문하면서 금융사들이 비교적 안전한 부동산 대출을 선호하게 됐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대출 비중이 약 20%에 달해 10%대 수준인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내부 진단을 내렸다.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은 건전성을 상당히 중시하는 쪽으로 개편됐다”며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시스템의 시효가 끝난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1998년 말 1조 4781억 원에서 지난해 말 317조 127억 원으로 214.5배나 뛰었다. 같은 기간 제조업 대출 잔액이 69조 2006억 원에서 447조 735억 원으로 6.5배 늘어난 것에 비해 증가세가 가파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업의 경우에는 토지나 건물을 담보로 삼기 때문에 일반 기업 시설·운영자금 대출에 비해 안전하게 여겨질 공산이 크다”며 “부동산업 대출이 확대된 데에는 이 같은 영향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계대출의 부동산 쏠림은 더 심각하다. 한은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가계 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말 51.7%에서 2024년 말 58.4%로 확대됐다. 주담대는 주택을 담보로 삼아 은행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대출 중 하나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은행의 가계·기업 부동산 관련 대출이 지난해 말 기준 1673조 8000억 원으로 2019년 말(1167조 원)과 비교해 43.4% 증가했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이 중 가계 부문 부동산 담보가 총 771조 3000억 원으로 전체의 46.1%를 차지한다.
이 같은 부동산 금융 쏠림은 국내 경제의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부동산 서비스의 생산유발계수는 2020년 기준 1.417로 전 산업(1.804)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생산유발계수가 높을수록 산업별로 창출되는 생산액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이 높은 분야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부동산업에 대출이 집중됐다는 것은 자원 배분 측면에서 상당한 비효율이 발생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처럼 교역이 어려운 재화·서비스로 금융이 집중되면 성장률 하락의 단초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과도한 건전성 중시 기조가 국내 은행의 대출 관행을 담보 위주로 굳어지게 만들고 이에 자금 흐름이 기업과 생산적인 분야가 아닌 부동산으로 쏠리는 왜곡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은 새 정부 들어 부동산 금융을 억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 지표 측면에서 기업대출을 우대하는 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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