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반체제’ 감독 자파르 파나히 “누구도 영화 창작을 막을 수 없다”

2025-09-18

이란에서 영화를 제작하려면 정부 부서에 각본을 제출해야 한다. 신정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국가 체제에 반하는 내용은 검열된다. “그 규칙을 따르고 싶지 않다면, 많은 문제를 직면하게 됩니다. 저도 겪었던 그런 문제들 말이죠.”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파나히 감독은 여러 차례 구금과 가택연금을 당했다. 2010년에는 국가로부터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 처분을 받았다.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이슬람 공화국에 반대하는 내용을 선전했다는 이유에서다.

탄압에도 파나히 감독은 영화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5월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으로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한 최초의 아시아 감독이 됐다. 파나히 감독은 “저는 사회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서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곳이건 문제가 있지 않냐”면서 “영화 제작자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어디서든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파나히 감독은 영화에서 억압받는 자들을 조명해 왔다. 제5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최고상) 수상작 <써클>(2000)은 차별받는 이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미혼모는 멸시받고, 아버지나 남편의 동의가 없이는 아이를 지울 수 없는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프사이드>(2006)는 축구 경기 관람이 금지된 이란 여성들이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남자로 변장한 채 잠입하는 얘기다.

국가로부터 영화 제작을 금지당한 후, 파나히 감독은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스스로 영화에 등장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는 파나히 감독은 택시기사로 분해 차에 탄 승객과의 대화를 촬영했다. 이를 모아 만든 영화 <택시>(2015)는 제65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최고상)을 받았다.

그에게 마지막 3대 영화제 최고상 트로피를 안겨준 <그저 사고였을 뿐>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됐다. 정치범으로 수감되며 모든 걸 잃은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가 감옥에서 자신을 괴롭힌 경찰과 똑 닮은 발걸음 소리를 내는 사람을 마주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영화는 고문을 자행하는 ‘그들’에게 폭력으로 앙갚음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제 이후 다음 달 1일 국내 정식 개봉한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프랑스 대표로도 출품이 결정됐다. 파나히 감독은 “프랑스와 공동 제작된 작품이라 출품이 가능했다”며 “(단독으로 제작했던) 영화 <오프사이드>(2006)는 ‘자국 스크린에 상영되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출품을 포기했었다”고 했다.

파나히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와도 인연이 깊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장편 데뷔작 <하얀 풍선>(1995)으로 부산을 방문했던 그는 “구금 등으로 오랜 기간 부산에 오지 못했었지만, 1회 때도 아시아 최고 영화제가 될 저력이 있다고 봤다”고 했다.

특히 그는 이번 내한 기간에 2017년 작고한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묘지를 찾았다. 파나히 감독은 “제가 출국 금지로 이란을 떠날 수 없을 때 김 프로그래머가 이란까지 찾아와주기도 했다”며 “생전 이란 영화를 정말 좋아해 주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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