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혐오 정서에 기댄 참정당
日 빈곤의 화살 세계화로 돌리며
도쿄 MZ 남성 중심으로 세 확장
참의원 선거 배외주의 양상 불안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1923년 일본에서 일어난 끔찍한 학살은 이런 유언비어에서 비롯됐다. 자경단은 죽창을 들고 다니며 조선인 색출에 나섰다. 일본인과 조선인을 가르는 기준은 ‘주고엔 고짓센(15엔 50전)’이었다. 발음이 부자연스러운 이들을 조선인으로 간주해 무참히 죽였다. 그 수가 6600명을 헤아린다.

102년 전 도쿄 일대에서 일어난 야만극을 최근 문필가 단체인 일본 펜클럽이 소환했다. 7·20 참의원(상원) 선거전에서 드러난 배외주의 양상이 간토(관동)대지진 당시와 흡사해서다.
반(反)외국인 정서를 부추기는 중심엔 신생 우파 정당인 참정당의 가미야 소헤이 대표가 있다. 그는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3일 도쿄 주오구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 자본이 점점 들어와서 도쿄 토지나 맨션을 사들인다든가, 기업 주식이 점점 팔려 경영자가 외국인이 돼 버린다든가 하는 일에 일정한 규제를 하자는 것이 참정당의 호소입니다. 외국인이 관광으로 오는 건 상관없지만, 값싼 노동력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들이면 결국 일본인 임금이 오르지 않습니다.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한 외국인은 어딘가로 도망쳐 버리고, 그런 사람들이 집단을 만들어 큰 범죄가 일어납니다.”
앞서 외신기자 브리핑에서는 프랑스 국민연합(RN)이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유럽 극우 성향 정당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참정당은 국회 의석이 5석에 불과한 작은 당이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난달 도쿄도의회 선거에 공천한 4명 중 3명을 당선시키며 처음 도의회에 입성하더니, 가미야 대표의 말을 닮은 가짜뉴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난무하는 중이다. “외국인의 국민건강보험료 미납액이 연간 4000억엔(3조7452억원)에 달한다”, “일본인은 장학금을 갚느라 어려움을 겪는데 중국인 유학생에겐 변제 의무가 없는 장학금 1000만엔(9360만엔)이 지원되고 있다”, “외국인 증가가 치안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등이다. 현지 언론들이 검증을 통해 ‘잘못된 정보’라고 수습하고 있지만 유언비어는 이미 곳곳으로 뻗어 나간 뒤다.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는 언행은 이번 선거 핵심 쟁점으로 여겨졌던 고물가 대응 논의를 덮어 버렸다. NHK방송이 지난달 16일부터 한 달간 SNS 엑스(X)에 올라온 선거 관련 게시물을 분석했더니 ‘외국인’ 관련 글이 119만건으로 ‘소비세’ 67만건, ‘고물가’ 19만건 등을 압도했다.
이렇다 보니 다른 정당들도 부화뇌동하고 있다. 저출생·고령화 해결을 위한 외국인 노동력 유입, 미국 대학 연구자·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던 집권 자민당은 최근 내각관방에 외국인 정책 사령탑을 신설했다. 겉으로는 외국인과의 ‘공생’을 내세웠지만 사회보험료 미납 방지, 운전면허증 변경 심사 엄격화 등 내용을 뜯어보면 규제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당 대표 입에서 “외국인은 일본 문화와 규칙을 무시한다. 일본인을 때리고 물건을 훔친다”(보수당 햐쿠타 나오키)는 혐오 발언이 공공연히 나오기도 한다.
왜 갑자기 배외주의일까. 가미야 대표 첫 연설에 힌트가 있다. 고도성장기인 1977년에 태어난 그는 “우리가 어렸을 땐 미래에 일본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희망이 없다”며 “일본이 빈곤화한 배경엔 세계화가 있다”고 했다. 성장 둔화의 화살을 외국 자본·인력의 유입으로 돌린 것이다. 불가항력적 자연재해 앞에서 화풀이 대상을 찾기 위해 유언비어를 뿌리던 102년 전과 닮았다. 그래서 일본 펜클럽은 “조금씩이라도 성숙·전진해온 민주주의 사회가 일시적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가의 유언비어나 차별적 발언에 의해 후퇴·붕괴하는 것을 우리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애초 이번 선거는 자민당 1강 체제의 붕괴와 다당제의 심화 가능성,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향후 운명에 관심이 모아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인 혐오 정서에 기댄 정당이 민의를 과다 대표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진다. 참정당은 도쿄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늘리더니 선거를 이틀 앞두고 목표 의석수를 20석으로 상향 조정했다. 125석을 뽑는 이번 선거의 참정당 구호는 ‘일본인 퍼스트’이다.
유태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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