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이라는 말이 비어 있지 않으려면

2025-07-20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을 내건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의 목소리를 이제는 제도 안에서 반영하겠다는 다짐이다. 실제로 국정기획위원회 아래 ‘국민주권위원회’가 설치되고, 시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모두의 광장’이라는 채널도 운영 중이다.

시민이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토론하며, 반영하는 구조를 우리는 ‘시민참여 거버넌스’라 부른다. 2010년대 후반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서울시 시민참여 예산제, 청년정책 네트워크 등 다양한 형태로 확산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시기, 참여 거버넌스는 여러 분야에서 무력화됐고, 일부는 사실상 중단됐다.

물론 그간의 참여 거버넌스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으나 참여자의 대표성 부족, 사회적 약자의 배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만 반영되는 구조 등은 주요한 비판 지점이었다.

그러나 그 한계는 참여 자체의 무용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정부가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 지금이야말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더 정교하고 신뢰받는 모델을 고민할 수 있는 시점이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다. 참여가 ‘투표’에만 그칠 경우, 기득권의 목소리는 과도하게 반영되고 다양한 계층은 배제되기 쉬우며 정책은 소수 관료에 의해서만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만다. 이러한 불균형을 조정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참여 거버넌스이다.

가령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청소년위원회’ 등 참여 기구를 통해 청년·여성·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 등 다양한 시민 그룹이 제도 설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계층별 협의체를 구성하고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핀란드의 ‘미래세대위원회’는 청년들이 매해 ‘국가미래전략보고서’를 발간하도록 해서, 국가의 중대한 방향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제는 우리도 묻고 고민해야 한다. 시민의 의견을 받았다는 ‘절차의 완성’에 머물지 않고, 정책을 함께 설계할 ‘결과의 동반자’로서 시민을 바라볼 수 있는가. 인구구조 변화, 기후위기, 양극화와 불평등 등 시대적 과제를 시민과 함께 직면하고 풀어내며 희망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가. 단순히 민원을 접수하는 수준을 넘어서, 시민을 정책 주체로 인정하고 사회적 대화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국가의 주요한 결정 구조까지 연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광장에서 우리는 준비된 시민들이 가득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이제 그 희망을 제도 안으로 온전히 이어가기 위해, 거버넌스의 또 다른 축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새 정부는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경각심과 기대를 함께 품고 ‘시민참여의 다음 버전’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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