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달 후면 또 한 살 더 먹는다. 아, 뭔가 억울하다. 올 한 해도 역시 나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다. 나도 내가 뭘 했나 싶다. 개인적으로 11월은 마음이 산란하고 어수선하다. 12월이면 그래, 연말이니까, 올해는 이미 다 지나갔으니 미련이나 후회 같은 아쉬움 따위 훌훌 털어버리고 즐기자!는 마음으로 가벼워지는데, 가을의 끄트머리, 아직 알록달록한 단풍들, 약간의 낭만이 남아 있는 11월은 다 내려놓기엔 애매하다.
2023년 실행된 ‘만 나이 정책’ 때문에 더 심란해졌다. 나이마저 헷갈린다. 나이 셈법이 바뀌어 1월 1일이 된다고 해서 한 살 더 먹는 건 아니라 하지만, 새해에는 해맞이, 새로운 기분으로 한 살 더 먹는 기분을 또 어쩔 수 없다. 나는 1985년생인데, 그래서 도대체 언제부터 마흔 살이라는 건지. 85년생 친구들끼리 만나도 각자 주장하는 나이가 다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받아들임인지, 우리는 몇 년을 계속 마흔이었고, 마흔처럼 살았다. 마흔 살이라 해서 엄청난 어른으로 사는 건 아니었을 테지만, 만나서 이제 우린 마흔이라고 신세를 한탄하고 속상했으니, 마흔 살로 충실하게 보낸 것 아닌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생기라곤 없는 중년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정말 너무나 어른 같아서, 특징이라곤 없는 그저 그런 중년의 한 사람처럼 보여서 깜짝 놀랐다. 옷 쇼핑할 땐, 귀여운 미키 마우스 캐릭터가 그려진 후드티셔츠를 들어보고는 많은 생각에 잠긴다. 혹시 깜찍한 쥐의 웃음과 손바닥의 쾌활함이, 나의 주름 가득한 얼굴과 소극적인 손과 비교가 될까 봐. 나는 아직 이불 속에서 과자 먹는 게 즐겁고, 친구들 보면 장난치고 싶고,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몸은 차곡차곡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 소화기관에서 가장 먼저 티가 났다. 튀김, 라면, 기름진 음식, 자극적인 음식, 그러니까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한다. 나도 예전엔 라면 두 개 먹을 수 있었다고! 삼겹살에 냉면 국물까지 원샷했다고!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우리는 예전처럼 살아간다. 서른아홉의 끝에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이어 할 뿐이다. 어제 다하지 못한 일을 수습하면서 내가 저질러 놓은 삶을 책임진다. 내 나이가 마흔이든 쉰이든, 내가 글을 쓰든, AI를 활용하든, 망하든 성공하든, 밥을 굶든, 세상은 꾸준히 성장하고 꾸준히 문제를 일으키면서, 또 꾸준히 발전해서 기어코 나를 따돌린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마흔 정도 되면 그 따돌림을 즐겨볼까, 뛰지 않고 걸어볼까, 하는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사십 년 정도 살았으니 그동안 내가 만들어 둔 삶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되는 건 이미 물 건너갔지만, 적절한 나의 정도를 안다. 이전까진 태어나보니 부모가 정해졌고 이렇게 생겼고 그런 사람을 만나서, 내 성격이 원래 저러하니까, 능력은 요만큼이고 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대로 살았다면, 마흔은 스스로 쌓아온 나만의 맷집으로 살아갈 수 있다. 기어가도 되고 걸어가고 되고 짝다리로 서 있어도 된다. 힘들면 주저앉아 쉬어도 괜찮다. 내일의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하루쯤 집안에 꽁꽁 숨어 있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물론 뛰어가도, 전력 질주해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뜨겁게 사랑해도 버틸 수만 있다면 상관없지.
세상은 바뀌었고 어른의 모습도 바뀌었다. 마흔이 모습이 정말 다양해졌다. 친구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이혼한 사람도 있다. 이혼 후 다시 연애하고 있는 친구는 약간의 망각과 확신이 생긴다면 다시 결혼하겠다고 했다. 굳이 형식적인 식과 법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동거해도 그 모습이 이상하지 않다. 사십 년의 세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마음’이라는 사실, 마음대로 살기 위해 나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것! 지금까지 살아온 맷집을 바탕으로 그 마음에만 오롯이 몰입해야 알아낼 수 있다. 나의 마음대로, 이왕이면 튼튼한 사랑으로 올 한 해를 돌아볼 수 있길. 마음대로 살아요, 우리. 대한민국 마흔들을 응원합니다.
김현주 울산 청년 작가 커뮤니티 W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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