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후 의료진 침묵, 유족 울분키워...설명·사과 보장 제도 필요”

2025-11-12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가 갈수록 심해지는 요인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우려가 꼽히는 가운데, 의료사고 피해자가 형사고소를 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의사와 환자가 의료사고에 대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 피해자 울분 해소와 형사고소 최소화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료사고 유가족에 대한 연구 결과, 이들의 울분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았다”며 “특히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 더욱더 그러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총 7명의 의료사고 유가족에 대한 심층면접(FGI)을 통해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이 겪는 감정을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어 발표한 백경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판례와 해외 법 체계를 바탕으로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을 법 제도로 도입해 의료분쟁을 겪은 환자의 울분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독일 민법은 의사는 환자에게 상당한 정보 제공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등 ‘설명 의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비슷한 내용이 판례에는 있지만, 법률로 도입돼 있진 않다. 독일 민법 사례를 수용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사고 설명 의무 ▶의료진의 사과·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 등을 법제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이 의무적으로 사고 내용·경위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고, 일정 기간 내에 피해자에게 사과·유감·위로 표현을 하면 소송에서 증거로 활용되지 않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의료사고 피해자도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의료과실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문제는 우리나라 의료사고 현장에서는 충분한 설명도, 애도의 표시도, 신속하고 적정한 피해배상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의료사고 피해자는 용서나 화해가 아닌, 응보적 형사고소를 더 많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사고 피해 환자 가족 류선씨 역시 “우리가 (사고 발생 후)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의료진의 대답은 ‘최선을 다했다’는 한마디였다”며 “그 어떤 설명도, 유감의 표현도 들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류씨의 딸 김주희(17)양은 지난해 서울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 기도삽관이 늦어지는 과정에서 뇌가 손상돼 11개월째 의식이 없는 상태다.

류씨는 “우리 요구가 부당하다면 어떤 점이 부당한지 설명이라도 해야 하지만, 병원은 침묵하고 있다”며 “피해자 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합리적 협의를 보장하는 제도적 창구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정부·여당 측도 이같은 전문가와 환자 측 제언에 공감을 표했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 수석전문위원은 “그동안 (환자와 의사 간) 소통이나 갈등 관리 차원에 대한 접근을 등한시했던 부분을 반성해야 한다”며 “(의료사고 피해자의) 상실감이나 울분을 치유하는 제도가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제안 주신 내용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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