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서명한 첫 법률은 1789년 7월 4일 발효된 ‘관세법’이다. 연방정부 재원 마련을 위해 수입품에 5% 안팎의 관세를 부과했다. 관세는 이후 한 세기 가까이 연방정부 세수의 90%가량을 차지했다.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관세 부과로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자 했다. 그의 국가 모델은 동북부 산업지대의 지지를 받았다. 해밀턴과 맞섰던 토머스 제퍼슨은 관세를 반대하고 자유무역을 지지했다. 제퍼슨은 농산물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동남부 농업지대를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두 사람의 대립은 이후 미국사를 관통하는 긴장 축이 됐다. 동북부에 뿌리를 둔 공화당이 집권하면 산업 보호를 내세워 관세를 대폭 올렸다. 동남부 농업 지역 기반 민주당이 집권하면 관세를 다시 내렸다. 남북전쟁(1861~1865)에서 승리한 공화당은 고관세 정책을 고수했다.
전쟁 중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관세율을 47%까지 올렸다. 링컨 암살 후 1912년까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줄곧 공화당이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공화당 장기 집권으로 관세율은 40%대를 유지했다.
19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 우드로 윌슨은 취임 직후 관세를 의미 있게 낮췄다. 1913년 언더우드 관세법으로 관세율은 25% 안팎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관세로 충당하던 연방정부 세수 부족을 메워야 했다. 당시 헌법은 연방정부의 직접세 부과를 금지하고 있었다. 윌슨은 헌법 개정을 통해 소득세 도입을 밀어붙였다. 1913년 수정헌법 제16조가 통과되면서 소득세가 시행되자 극심한 소득격차 해소와 세수 확충 방안 마련에 청신호가 켜졌다. 누진세 구조로 설계된 소득세는 1918년에는 연방 세수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게 됐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상호관세의 합헌성을 심리하고 있다. 트럼프는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서명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각국에 광범위한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과 펜타닐 마약 밀수·유통뿐만 아니라 무역적자 확대까지 국가비상상태로 규정하며 IEEPA를 적용했다. 하지만 다수의 법률가는 이를 대통령 권한 남용으로 본다. 1심과 2심 법원 모두 위헌 판단을 내렸고, 대법원 역시 이를 뒤집을 가능성이 작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법원이 제동을 걸어도 트럼프는 관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상은 명확하다. 관세로 세수를 충당하고 소득세가 폐지된 19세기형 국가 재정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실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유권자다. 2026년 중간선거와 2028년 대선이 진짜 심판대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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