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고, 숨쉬는 모든 순간, 우리 몸속 장내 미생물은 조용히 일하며 건강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흔히 장내 미생물이라고 하면 소화나 변비 정도를 떠올리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 작은 존재들이 혈압 조절과 피부 건강, 나아가 면역 체계 전반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장내 미생물은 단순한 ‘소화 보조자’가 아니라, 몸속의 여러 기관과 대화를 주고받는 보이지 않는 지휘자로서 주목받고 있다.

[출처 : Ercolini, D., & Fogliano, V. (2018). Food design to feed the human gut microbiota ]
# 장내 미생물과 혈압: 장에서 시작해 신장까지 이어지는 ‘비밀 회선’
혈압 조절과 장내 미생물의 관계는 다소 의외다. 하지만 그 연결 고리의 핵심에는 ‘후각수용체’라는 특별한 단서가 있다. 후각수용체는 원래 코에서 냄새 분자를 감지하는 센서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수용체는 신장, 심장, 피부, 지방세포 등 전신 곳곳에 퍼져 있다.
신장에 있는 후각수용체는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단쇄지방산(SCFAs)이라는 화합물과 소통한다. SCFAs는 우리가 먹은 음식, 특히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이 대장에 도달했을 때 장내 미생물이 발효를 통해 생산하는 대사산물이다. 이 신호 물질이 혈액을 타고 신장까지 이동하면, 후각수용체가 이를 감지하고 혈압 조절의 핵심 효소인 레닌(renin)의 분비를 조율한다.
즉, 점심에 먹은 통곡물 빵 한 조각이 장에서 발효되어 생긴 신호가, 몇 시간 후 신장에서 혈압을 조절하는 일련의 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 장내 미생물과 면역: 보이지 않는 ‘방어 사령부’
장 점막은 인체에서 가장 많은 면역 세포가 모여 있는 곳이다. 장내 유익균은 단순히 병원균을 막는 수준을 넘어, 면역 체계의 교육자 역할까지 한다. 신생아 시기, 출산 방식과 모유 수유 여부에 따라 형성된 초기 장내 미생물 군집은 평생의 면역력 패턴을 좌우한다.
건강한 장내 환경은 병원균이 장벽에 달라붙는 것을 막고, 염증 반응을 억제하며, 면역 세포들이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조율한다. 반대로 유익균이 줄고 유해균이 번성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알레르기·천식·만성 염증성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 장과 피부: 보이지 않는 연결선
피부는 몸속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져 면역 체계가 불안정해지면, 염증 반응이 전신으로 확산되고 피부에 여드름, 아토피, 민감성 피부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한 외부 환경의 결과가 아니다. 피부 표면의 트러블은 장 속 미세 생태계의 붕괴라는 내부 신호일 수 있다. 장 건강이 좋아지면 피부가 맑아지고, 피부 장벽이 강화되며, 외부 자극에도 쉽게 붉어지거나 가렵지 않게 된다.

# 식습관이 설계하는 장내 생태계
우리 몸속 장내 미생물 군집은 하루하루 우리가 먹는 음식과 생활 습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 균종의 다양성,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대사산물의 종류까지도 식습관에 의해 좌우된다.
1. 유익균을 늘리는 음식군
● 발효식품: 김치, 청국장, 사우어크라우트, 요거트 등은 살아있는 유산균을 공급해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SCFAs 생성 능력을 강화한다.
● 프리바이오틱스: 통곡물, 채소, 과일 껍질, 콩류에 들어있는 식이섬유와 올리고당은 유익균의 주요 먹이로, 장내 발효를 촉진하고 대사 건강을 개선한다.
2. 유해균의 확산을 억제하는 습관
● 가공식품 최소화: 정제 탄수화물, 설탕,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은 유익균의 먹이를 빼앗고 유해균 번식을 촉진한다.
● 균형 잡힌 섭취 주기: 불규칙한 식사나 폭식·단식 반복은 장내 미생물 구성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3. 생태계 안정화를 위한 지속성
한국영양학회 권장 기준에 따르면 성인 남성은 하루 25g, 여성은 20g 이상의 식이섬유 섭취가 필요하다. 이는 하루 세 끼에 채소 반찬을 고르게 포함시키고, 간식 대신 과일이나 견과류를 선택하는 습관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루 이틀의 변화’가 아니라, 매일 이어지는 패턴이 장내 생태계를 설계한다는 점이다.
# 피부 트러블 개선을 위한 면역 강화 식단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안정되면 전신 면역이 강화되고, 피부 장벽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면역과 피부 건강을 동시에 잡으려면, 특정 영양소의 기능과 그 영양소가 들어있는 식품군을 이해하고 식단에 적용해야 한다.
1. 단백질과 충분한 열량
● 역할: 피부 재생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공급하고, 면역세포·항체 생산을 돕는다.
● 결핍 시: 대식세포와 T세포의 활동이 저하되어 상처 치유가 늦어지고, 피부 염증이 오래 지속된다.
● 식품 예시: 생선, 살코기, 두부, 달걀, 콩류
2. 비타민과 미네랄
● 비타민 A: 점막과 피부 장벽 강화, 면역세포 기능 유지. → 고구마, 당근, 시금치.
● 비타민 C: 강력한 항산화 작용, 콜라겐 합성 촉진, 염증 완화. → 파프리카, 키위, 딸기.
● 비타민 D: 면역 활성화, 피부 감염 위험 감소. → 연어, 고등어, 햇빛 노출.
● 비타민 E·아연·셀레늄: 세포 산화 스트레스 억제, 회복 속도 향상. → 견과류, 해바라기씨, 해산물
3. 수분 섭취
● 역할: 점막과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해 병원체 침투를 막고, 장내 발효 환경을 최적화한다.
● 실천 팁: 하루 1.5~2리터 목표, 찬물보다 미지근한 물이나 따뜻한 차 권장.
4. 연구와 응용
● Navarro-López et al. (2018) 연구에 따르면,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를 함께 섭취한 아토피 환아에서 피부 가려움이 유의하게 감소했다.
● 피부 트러블이 잦은 사람은 단백질·비타민·미네랄의 균형이 무너지기 쉬우므로, 하루 세 끼에 단백질원과 채소를 반드시 포함하는 ‘컬러 플레이트’ 식단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영양소와 식습관은 장내 유익균의 활동을 촉진해 전신 면역력을 높이고, 그 결과 피부 트러블이 쉽게 진정되고 재발도 줄어든다.
# 건강한 장이 만드는 건강한 피부, 그리고 더 나은 삶
장내 미생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혈압, 면역, 피부 건강까지 조율하는 정교한 지휘자다. 이들의 균형이 무너지면 피부는 자극에 쉽게 붉어지고, 면역은 흔들리며, 전신 건강에도 경고등이 켜진다. 반대로 장내 환경이 안정되면 피부는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되찾고, 혈압은 안정되며, 면역 체계는 유연하고 강하게 작동한다.
피부 트러블을 해결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고가의 화장품이나 즉각적인 시술에 의존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 몸 내부에서 시작된다. 매일의 식탁에서 유익균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스트레스와 수면 패턴을 조율하며, 수분과 영양을 충분히 채우는 일은 단순히 피부 개선을 넘어 삶의 질 전체를 끌어올리는 투자다.
BOTANICENS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피부·장·몸·마음을 하나로 잇는 통합적인 뷰티·웰니스 루틴을 제안한다. 이는 ‘예쁘게 보이는 피부’를 넘어, ‘건강하게 기능하는 피부’를 만드는 여정이다. 오늘 식탁 위 한 끼의 선택이, 내일 거울 속 나를 바꾸고, 장기적으로 더 활기찬 삶을 선물할 수 있다.
건강한 피부와 몸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의 사소한 선택이 몸속 미생물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혈압과 면역, 피부의 균형을 회복한다.
■ 참고문헌
● Ercolini, D., & Fogliano, V. (2018). Food design to feed the human gut microbiota.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 66(15), 3754-3758. https://doi.org/10.1021/acs.jafc.8b00456
● Belkaid, Y., & Hand, T. W. (2014). Role of the microbiota in immunity and inflammation. Cell, 157(1), 121–141.
● Pluznick, J. L., et al. (2013). Olfactory receptor responding to gut microbiota-derived signals plays a role in renin secretion and blood pressure regul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0(11), 4410-4415.

박태선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1995년~현재), (주)보타닉센스 대표이사(2017년~현재), 연세대학교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광고특별위원회 위원장, International Journal of Obesity, Editorial Board Member(2011년~현재), Molecular Nutrition & Food Research, Executive Editorial Board Member(2011년~현재), 미국 스탠포드의과대학 선임연구원, 미국 팔로알토의학재단연구소 박사후연구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데이비스 캠퍼스) 영양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