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4년 만에 최대 폭 증가했지만…메가톤급 대미 투자에 내년 이후가 문제

2025-11-02

올해 3분기까지 설비투자가 4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월별로도, 분기별로도 점차 나아지는 흐름이 뚜렷하다. 반가운 회복세지만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단하긴 어렵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대규모 대미 직접 투자가 불가피해지면서 국내 투자 위축과 제조업 공동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산업 설비투자지수(원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3% 늘었다. 2021년 같은 기간 11.3%을 기록한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자동차와 반도체 투자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자동차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0년(33.9%) 이후 25년 만에 최대 폭인 15.6%를 기록했다. 전기차 전환시설 확충, 자율주행ㆍ인공지능(AI) 등에 투자를 늘린 효과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 투자도 15.7% 증가했다. 2021년 57.2%를 기록한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이 늘었다.

메모리반도체 재고 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고, AI 패러다임 전환으로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접어들며 투자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4분기 -1.8%, 올해 1분기 -1.7%에서 2분기엔 보합으로 올라섰고, 올해 3분기 5.8% 증가했다. 부진을 끊고, 방향을 전환하는 흐름이다.

낙관할 상황만은 아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관세 부담은 일부 완화됐지만, 그 대가로 약속한 대규모 대미 투자(3500억 달러)가 국내 투자 여력을 갉아먹을 수 있어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간 대미 투자가 내년부터 현재의 2배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업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국내에 투자할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 등 10대 제조업의 국내 투자 실적은 약 114조원이다. 국내총생산(GDP)의 4%, 전 산업 설비투자의 42%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지금은 설비투자 회복이 하반기 경제성장률 상승세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당장 내년부터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비롯한 미국과의 산업 협력이 본격화한다. 허 교수는 “이번 대미투자는 과거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때처럼 국내 투자와 보완적인 성격이 아니라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한 전면적 투자 형태”라고 짚었다. 해외 투자에 따른 국내 낙수효과를 기대할 상황도 아니라는 뜻이다.

국내 투자 위축은 제조업 공동화를 부를 수 있다. 투자가 줄고, 제조업 기반 시설이 미국으로 옮겨가면 제조업 거점이 되는 지역 경제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과거 조선업 쇠락기 때처럼 제조업 투자 부진이 중장기적으로 중소ㆍ중견 공급업체 위축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시장 등으로 연쇄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 경쟁력을 키워 내수시장을 탄탄하게 키우고,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수출 확대로 이어지도록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용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고용 이슈가 발생하자 실업자나 임금이 줄어든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식으로 지원했다”며 “해외 직접투자 증가에 따른 피해기업 지원, 직업전환훈련 강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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