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예비 소집일인 12일 오후 1시 2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약국에 마스크를 쓰고 검은색 패딩을 걸친 남학생 한모(18)군이 들어왔다. 한참을 머뭇거리는 그에게 약사가 “찾는 게 있느냐”고 묻자, 그는 말을 더듬으며 ‘홍삼 스틱과 종합 비타민을 달라’는 취지로 답했다. 약국을 나온 한군에게 머뭇거린 이유를 묻자 “주변에서 ‘수능약’을 많이들 먹으니 영양제라도 하나 먹어야 안심될 것 같아서 왔지만, 평소 먹지 않던 것들이라 잠시 고민을 했다”며 “제가 다니고 있는 학원에 수능약을 먹는 친구들이 성적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수능을 하루도 채 남겨두지 않은 이 날 오후까지도 학생·학부모들 사이에선 수능약 후기가 번지고 있었다. 긴장을 완화해 주고 떨림·두근거림을 줄여주거나 집중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다. 대치동에서 수능약으로 통용되는 것은 고혈압·부정맥 등 심혈관 질환 치료제인 인데놀과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등이다.
이 약품들은 전문 의약품이라 처방 받으려면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오남용 시엔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문제는 의사 처방 없이 온라인으로 약을 파는 행위 자체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위조품일 가능성도 있어서 위험하다. 대치동에서 만난 재수생 이모(19)군은 “요즘 SNS를 통해 구매하고 서로 나눠주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의사 처방 없이 온라인 불법 판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달 20~24일까지 온라인 쇼핑몰과 SNS 등에서 불법으로 ‘수험생 영양제’ ‘ADHD 치료제’ 등의 제품을 판매하는 게시물을 점검한 결과, 773건의 부당 광고를 적발했다. 하루 당 154건씩 적발된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관련 광고는 활개치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이날 엑스(X·옛 트위터) 등을 통해 검색해보니 수험생과 학부모를 현혹하는 문구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각종 의약품을 칵테일처럼 음료에 섞어 마시는 조합법도 퍼지고 있다. 고카페인이 들어 있는 에너지 음료에 고함량 비타민C를 섞어 마시는 방식이다. 일부 약국에선 계산대 인근에 ‘수험생 공부 세트’라는 이름으로 이를 진열했다.
의약품이 아닌 역술에 의존하는 일부 학부모도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부적 덕에 수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등의 후기글이 올라오면서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무속인들은 최근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10만∼60만원에 달하는 부적 등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6년째 수능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모(33)씨에 따르면 최근 학생들 사이에선 “올해 정권이 바뀌었으니 탄핵 관련 지문이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없앤다고 했던 킬러 문항(초고난도)이 이번엔 많아질 것”이라는 등의 유언비어도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극도의 ‘불안감’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고, 평소와 같은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시험을 앞두고 발생하는 불안 증상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특히 의약품 등은 치료 목적에 따라 의사의 진단을 거쳐 안전하게 사용되지 않으면 부작용을 동반하고 심리적 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시·도청-교육청, 수능 날 '안전 핫 라인' 구축
한편 경찰은 수능 당일 총력 대응을 예고했다. 13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고사장 주변에 경찰관 등 1만475명을 배치할 예정이다. 시험장 주변 불법 주·정차 차량 단속뿐 아니라 시간에 맞춰 입실하기 빠듯한 수험생의 경우 순찰차 등을 활용해 수송 지원한다. 최근 허위 폭파·테러 예고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예방책을 마련했다. 각 시·도청과 교육청 간의 핫라인을 구축했고, 교육부와 협조해 ‘일본발 테러 협박 발생 시, 안전조치 안내계획’도 수립했다. 수능 당일 관련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강력한 법적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