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보아도 중국의 당태종(598~649·사진)은 우리의 역사에서 아름답게 그려져 있지 않다. 그는 선비족(鮮卑族)의 후손이니 고구려인과 같은 혈통이었음에도, 우리 민족과 악연이 맺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인인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중국 역사에 문예를 떨친 성인과 무공을 쌓은 군주는 많았으나 그만큼 문무를 겸전한 인물이 일찍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에서 그를 혹평하는 데에는 국사학의 잘못이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역사학은 끓는 가슴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역사는 가슴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쓰는 것이다.
당태종은 재위 기간에 서방의 영토를 확장해 수나라 때보다 두 배가 넓었으나 동방의 고구려만이 복속하지 않는 것을 불쾌히 여겨 645년에 몸소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병력 10만 명으로도 정벌에 실패하자 당나라 사령관 이세적(李世勣)은 “이 성을 함락시키는 날 남자를 모두 죽이겠노라”고 장담했다. 전투는 60일간 계속되었으며 전후 7차에 걸쳐 연인원 50만 명이 투입되었지만, 당태종은 끝내 이기지 못했다. 제국을 통일한 패왕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 국수주의 사학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楊萬春)이 쏜 화살에 당태종은 왼쪽 눈을 잃고 퇴각했다고 배웠지만 근거 없는 말이며, 다만 그 무렵에 당나라 군진에 안질이 퍼졌고, 당태종도 그에 감염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군대를 퇴각시키면서 그는 고구려인의 투혼에 감탄해 요동성(遼東省) 양곡 10만 석과 포상을 위해 가져온 비단 100필을 안시성 성주에게 선물로 주고, 투혼을 칭송했고, 연개소문(淵蓋蘇文)에게는 궁복(弓服)을 선물로 주었으나 그는 이를 받고도 사례하지 않았다. 남북 분단으로 그 고구려의 기상에 관한 교육이 오그라드는 것이 안타깝다. 시진핑이 다녀간 뒤에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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