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상곡
팀 오브라이언 지음 | 이승학 옮김
섬과 달 | 612쪽 | 2만5000원

2019년 여름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마트 매니저로 일하던 ‘보이드’는 권총 한 자루와 봉투를 들고 은행을 턴다. 큰돈이 필요했던 건 아니다. 스스로 실패자로 여기는 보이드는 사고를 치고 도피하는 행위만으로도 무의미한 삶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는 자신에게 돈을 건넨 은행수납원 ‘앤지’를 충동적으로 납치해 멕시코와 미국 곳곳으로 도피 행각을 벌인다.
보이드는 왜 실패자가 됐을까. 전도유망한 신문사 기자였던 그는 더 큰 성공을 꿈꾸며 자신만의 뉴스사이트를 열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가 만든 가짜 정보들은 사회 곳곳으로 번지면서 또 다른 거짓 정보들을 생산해냈다. 예컨대 ‘링컨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E=mc²’ 공식이 틀렸다는 식의 거짓말을 국민 대부분이 믿게 된 것이다. 거짓 정보가 번질수록 보이드의 명성은 커졌다. 하지만 그의 장인이 보이드가 거짓말을 일삼고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고 폭로하면서 보이드는 추락했다. 가정과 사회적 지위는 물론 자아까지 잃게 됐다. 소도시 작은 마트의 매니저로 지루한 일상을 살던 그가 변화를 위해 택한 것이 강도짓이었다.
그런데 8만달러(1억여원)라는 큰돈이 사라졌음에도 언론은 조용하다. 은행 소유자 ‘더글러스’가 자신의 비자금 은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사건을 ‘없는 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쫓는 건 경찰이 아닌 앤지의 오랜 남자친구 ‘랜디’다. 앤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착각한 그는 복수를 위해 두 사람을 추적한다. 도피가 이어지고, 미쳐가는 보이드와 그나마 이성적인 앤지의 대화가 이어진다.
작가는 자신의 베트남 파병 경험을 녹인 소설 <카차토를 쫓아서>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21년 만에 출간한 소설 <미국 환상곡>은 물리적 전쟁 대신 미국의 ‘정보 전쟁’을 다뤘다. 특히 소설 속 경제적 풍요, 로드트립, 카지노 등 ‘아메리카 드림’ 같은 배경들 사이 보이는 가짜 뉴스의 창궐은 현재의 한국과 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모론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