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9월 22일,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윌리엄 맥도너는 월가의 주요 은행장들을 긴급히 소집했다. 골드만삭스·JP모건 등 내로라하는 14개 투자은행 대표들이 고색창연한 맨해튼 연준 건물로 들어섰다.
회의장 분위기는 무거웠다. 의제는 위기에 빠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구제였다. LTCM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즈와 로버트 머튼이 1994년 설립한 헤지펀드였다.
LTCM은 자본 대비 27배에 달하는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해 저평가된 고위험 자산을 매수하고, 고평가된 저위험 자산을 공매도하는 차익거래 전략으로 유명했다. 10억 달러로 시작한 자본이 4년 만에 5배로 불어났고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률로 ‘월가의 신화’가 됐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동유럽으로 번지고, 재정위기를 겪던 러시아가 국채 부도를 선언하자 고위험 자산 가격이 급락했다. LTCM은 자본의 90%에 달하는 손실을 보았고, 거래 상대방인 은행들까지 연쇄 타격을 받을 상황이었다.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월가 은행들은 32억 달러의 자본 수혈에 동의했다. 민간 헤지펀드에 대한 전례 없는 구제금융이었다.
충격은 자본시장 전반으로 확산됐다. 1998년 7월 2000포인트를 돌파했던 나스닥 지수는 34% 하락했다. S&P500 지수도 1000포인트 선이 무너지며 20% 하락했다. 하지만 위기는 곧 ‘요행’으로 변했다.

연방준비제도(Fed)는 당시 1%대의 낮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정책을 고수해 아시아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태도를 급선회했다.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세 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했고, 10월에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특별회의까지 열어 추가 인하를 단행했다.
연준은 연준의 안전판 역할에 대한 믿음인 ‘연준 풋(Fed put)’을 작동시켜 주가 하락을 막았다. 연준이 금리를 내려 유동성을 주입하자 시장은 마음 놓고 급등 랠리를 연출했다. 나스닥은 이듬해 4000포인트를 돌파했고 2000년 5000포인트를 넘어섰다. 닷컴 버블은 연준이 다시 유동성 고삐를 죄자 처참하게 붕괴했다.
오늘날 상황도 닮은꼴이다. 고용 부진을 이유로 연준이 연달아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인하하고 내년에도 통화완화 정책을 지속하면, 1998년의 ‘유동성 유포리아’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중소형주와 암호화폐 같은 위험자산 가격도 급등할 여지가 크다. 연준이 긴축으로 전환하면 버블이 터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