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 예능프로그램 홍수 속에 요즘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입니다. 인생 첫 연애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은 여러모로 참 서툽니다. 유혹은커녕 상대와 눈을 마주치는 것부터 난관입니다. 그런 출연자들 옆엔 ‘연애 코치’가 있습니다. 방송인 이은지, 가수 카더가든 등 패널들은 패션부터 화술까지 솔로 탈출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연애 코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으신가요? 만약 있다면 반길 만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치,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입니다.
글로벌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들이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세계 최대 데이팅 앱인 ‘틴더’입니다. 틴더는 지난 3월 AI 비서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AI가 사용자가 올린 사진 중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사진을 골라주고, 호감도를 높일 만한 프로필을 작성해주는 기능입니다. 확률적으로 사용자에게 잘 맞을 법한 상대를 제안해주기도 합니다.
또 다른 데이팅 앱 ‘그라인더’는 2027년 도입을 목표로 ‘AI 윙맨’을 개발 중입니다. 윙맨은 ‘바람잡이’를 뜻하는 말로, 사용자 맞춤형 조언을 해주고 데이트 장소까지 추천해주는 기능입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윙맨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을 뜻하는 일명 ‘티키타카’는 연애에서 중요한 법이니까요. 이 밖에도 많은 데이팅 앱이 AI를 구원투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전환(AX)은 대부분 산업의 숙제이지만 데이팅 앱의 경우엔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다. 2010년대 모바일 시대와 함께 등장한 데이팅 앱은 팬데믹 기간 폭발적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인기는 시들해졌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엔데믹과 함께 오프라인 만남이 다시 떠오른 데다 데이팅 앱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용자가 많아졌습니다. 앱 신뢰도 역시 하락했습니다. 지난 5월 가짜 여성 계정을 만들어 남성 고객을 유인한 데이팅 앱 운영사가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는 뉴스를 기억하실 겁니다.
이용자 감소에 데이팅 앱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전 세계에 5000만명 넘는 이용자를 보유한 ‘범블’은 지난 5월 전체 인력의 30%(약 240명)을 정리해고했습니다. 틴더, 힌지 등 여러 데이팅 앱을 운영하는 미국 매치 그룹도 비슷한 시기 전체 인력 중 13%(325명)를 내보냈고요.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오프콤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틴더를 비롯한 상위 10개 데이팅 앱 이용률은 2023년 이후 1년 만에 16%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AI가 있다고 만사형통은 아닙니다. AI가 앱 속의 나를 멋지게 포장해줄지는 몰라도 실제 만남에선 결국 내 진짜 매력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데이팅 앱이 AI를 적극 도입한 이후 오히려 상대를 신뢰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용자 반응도 나옵니다. 상대가 앱에서 보여준 위트나 매너, 심지어는 감정까지 진정 그의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는 겁니다.
윤리적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계는 신뢰라는 토대 위에 쌓는 성입니다. 앱에서 친밀해진 상대방이 알고 보니 AI 코칭대로 반응하고 있었을 뿐이라면 그 관계는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익명성과 비대면으로 작동하는 데이팅 앱은 사용자 간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인간 간 상호 소통을 AI에게 맡길 경우 사용자는 물론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선 AI 의존이 계속되면 관계 맺기 기술의 퇴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데이팅 앱들의 AI 실험은 초기 단계입니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 보도를 봐도 미국 Z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데이팅 앱의 AI 기능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응답이 더 많았습니다. 어쩌면 AI는 데이팅 앱과 사랑 어느 쪽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