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국 외교의 무대를 넘어, K푸드·K뷰티 등 ‘일상 한류’가 세계 시장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글로벌 CEO와 백악관 대변인 등 주요 인사들이 치킨과 소맥(소주+맥주), 화장품, 홍삼 등 한국의 생활문화를 경험하며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시킨 것이다. 업계는 이번 APEC을 “외교와 소비가 결합한 새로운 경제외교 무대”로 평가하고 있다.
◇ 젠슨 황 “K치킨은 세계 최고”…교촌에프앤비 주가 10% 급등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15년 만의 방한에서 ‘K푸드 홍보대사’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과 함께 치킨과 소맥을 곁들인 회동을 가졌다.
황 CEO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치킨은 세계 최고”라며 “미국에서도 가장 맛있는 치킨은 한국 브랜드”라고 언급했다.
그의 발언은 곧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다음날 교촌에프앤비 주가는 장중 10% 넘게 급등했다.
증권가에서는 “글로벌 CEO의 긍정적 언급이 브랜드 가치 상승과 수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며 “K푸드 산업에 대한 상징적 홍보 효과가 막대하다”고 분석했다.
황 CEO가 시민들에게 직접 치킨과 김밥, 바나나우유를 나눠주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한 팬이 건넨 정관장 홍삼 스틱을 맛본 그는 “건강에 좋은 제품이냐”며 감탄을 표했고, 이후 SNS에서는 ‘#KRedGinseng’(K홍삼) 해시태그가 확산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K푸드가 단순히 먹거리를 넘어 ‘한국식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며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현지화된 한류 소비’가 글로벌 유통 확장의 촉매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백악관 대변인 “한국 화장품 최고”…‘올리브영 쇼핑 인증’ 확산
K뷰티 역시 이번 APEC 기간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미국 백악관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27)은 지난달 29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South Korea skincare finds(한국 화장품 발견)”이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이 구매한 한국 화장품 13종을 공개했다.
사진 속에는 마스크팩, 세럼, 립밤, 선크림 등 다양한 브랜드가 있었으며, ‘올리브영 단독 기획’ 문구도 눈에 띄었다.
그의 팔로워 수는 30만 명. 레빗의 게시물은 미국 뷰티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레빗 픽(Lewitt Pick)’이라는 K뷰티 추천 리스트까지 만들어졌다.
유통업계는 “백악관 대변인의 소비 인증은 인위적인 마케팅보다 강력한 신뢰 효과를 낸다”며 “K뷰티의 프리미엄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한류, 외교에서 산업으로…“자연 발생형 경제 효과”
이번 APEC 기간 중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한국 화장품을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에게 한국 김과 화장품을 선물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경주 만찬 자리에서 안동소주 하이볼을 마신 뒤 “너무 부드럽다”며 “소 굿(so good)”이라고 감탄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자연 발생형 경제외교’로 분석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이번 APEC은 정상외교뿐 아니라, 소비와 브랜드가 함께 움직인 복합적 경제 이벤트였다”며 “일상적 브랜드가 세계 정상들의 SNS를 타고 확산된 것은 새로운 형태의 ‘K브랜드 외교’”라고 말했다.
◇ “K라이프스타일이 곧 산업 경쟁력”
K푸드·K뷰티는 이미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성장했다. 관세청이 10월 말 발표한 ‘2025년 1~9월 누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들어 화장품 수출액은 85억 2000만 달러, 식품 수출액은 84억 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각각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4%, 8.9% 늘어난 수치다.
업계는 이번 APEC 회의를 계기로 “한류가 산업 경쟁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젠슨 황의 한마디, 백악관 대변인의 SNS 한 장면이 한국 기업의 브랜드 자산을 수백억 원 단위로 끌어올리는 시대”라며 “외교 무대가 곧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되는 ‘경제외교 2.0’이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