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한국 수영의 신기록 제조기를 만든다. 지도력과 결실만 따지면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4강 연출가인 거스 히딩크 감독에 견줄 만하다. 지난달 부산 전국체전(체전)에서 강원특별자치도청 수영팀을 이끈 이보은(49)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체전에서 '이보은 사단'은 한국신기록 6개를 쏟아냈다. 황선우(22)의 자유형 200m, 김영범(19)의 자유형 100m 기록은 지난해 파리올림픽 해당 종목의 금메달과 은메달에 준하는 성적이었다.
이 감독을 12일 춘천에서 만났다. 체전 직후 요청한 인터뷰를 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나고 할 수 있었다. 발표 전이지만, 국가대표 10명 중 강원도청 소속이 황선우, 김영범, 김우민(24), 양재훈(27), 최동열(26), 윤지환(19) 등 6명에 이를 전망이다. 마흔의 끝자락에 선 여자 감독은 건장한 '이대남'들을 어떻게 쥐락펴락하며 '어벤저스' 수영팀으로 만들었을까.
"수영은 팀 스포츠다." 이 감독이 내린 정의다. 가장 고독한 개인 종목이라는 통념과 반대다. "팀 분위기가 좋아야 성적이 좋아진다"고 단언한 그는 "선수를 뽑을 때도 인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인성이 나쁘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 오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뻔한 말 같지만, 기본이 중요하다. 훈련 때 '지키면서 빠르게'라는 말을 자주한다. 모든 동작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빠르게 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라고 '코칭'의 원칙을 설명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여성이 남성을 지도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남성이 스포츠에선 더 빠르고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품이 소탈하고 화통한 이 감독은 "오히려 남자 선수를 가르치는 게 편하다"며 "소통하기도 더 쉽다"고 말했다. 그는 "수영할 때 어떤지는 눈 감고도 알 수 있다"며 "선수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기보다는 어떻게 고치는 게 좋겠다는 대안을 알려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1년 은퇴해 2012년 강원체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약 4년 만인 2016년 강원도청의 지휘봉을 잡았다. 강원체고를 지도하며 전국체전 메달을 추가하며 실력으로 '유리 천장'을 깼다. 이 감독은 "남자 선수를 지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강원도청은 이제 선수들이 가장 오고 싶어하는 팀이 됐다"고 자부했다.
이 감독은 "다시 태어나도 수영 선수를 하고 지도자를 할 거다. 아직도 수영이 너무 좋다"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수영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그는 “육상부 선생님도 관심을 보였다. 아빠가 딸이 햇볕에 그을리는 게 싫다고 수영부를 알아봐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배영을 했다. 중3을 마친 뒤 자유형으로 바꾸었다. 앞으로 나가는 걸 보면서 수영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록이 빨라지더니 고1 학년말 때 대표선수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10년간 국가대표로 뛰며 한국기록을 29번 경신했고, 전국체전 금메달도 38개 땄다. 35세까지 선수를 할 만큼 수영을 천직으로 여겼다. 선수시절 막바지에는 접영에도 도전했다. "강원도청에서 선수로 뛰던 2000년대 초반에 계영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가 터치패드를 찍고 실신을 해 물 속에 잠긴 적이 있다"고 선수시절 에피소드를 회고했다.
악바리처럼 수영에 매진했던 그는 꽃길만 걸었던 걸까. 그는 "나보다 슬럼프를 많이 겪은 사람도 없을 거다. 꼭 어두운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면 한 단계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4년 전 도쿄올림픽 이후 황선우를 스카우트할 때 '대한민국에 나보다 더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약속을 지켰다. 황선우는 이 감독과 함께 기나긴 슬럼프를 빠져나왔다. 체전 자유형 200m에서 1분43초92의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황선우는 "이젠 대회를 앞두고 어떻게 컨디션을 관리하면 되는지 감을 잡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황선우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테이퍼링'(경기를 앞두고 훈련을 줄여가는 컨디션 조절법)이다. 그 전에도 테이퍼링을 했지만, 이번에 좀 더 과감하게 했다. 이 감독은 "사실 올 초 국가대표팀 코치를 겸하면서 팀과 병행하는 것에 큰 어려움과 좌절을 겪었다. 그게 결과적으로 지도방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도를 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해외 전지훈련을 강조한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현지 지도자를 섭외하고 난 서포터가 된다. 지휘봉을 놓으니 처음엔 선수들이 더 당황했다. 선수들에게 '선생님도 아직 배울 게 많다'고 얘기했다"며 "강원도청은 해외에서 열리는 작은 오픈대회에도 많이 나간다. 난 예전에 국제대회 나가면 함성과 박수에 얼어붙어 제대로 뛰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해외 대회에서도 여유있게 경기에 임한다"고 말했다.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도 "아직 배고프다"고 했던 히딩크처럼 이 감독도 멈출 생각이 없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황선우를 기대해도 좋냐는 질문에 그는 "선우보다 더 기대되는 선수도 있다"고 답했다. 자유형 100m에서 47초39의 한국신기록으로 선배 황선우를 넘어선 김영범(19)을 두고 한 말이다. 키 1m95㎝에윙스팬(양팔 너비) 2m16㎝의 압도적 피지컬을 지닌 '수영 괴물'이다.

이 감독은 "올림픽보다 내년 아시안게임이 먼저다. 특출난 선수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라 앞세대를 이어갈 후배 유망주까지 나와야 한국 수영이 한 단계 도약한다"며 "계영에서 중국을 누르고 싶다"고 개인이 아닌 팀의 승리를 강조했다. "LA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도 가능하냐"고 재차 묻자 "황선우와 김영범 모두 기량이 피크에 이를 수 있다"며 웃었다.
성공한 지도자는 원래 비슷한 공통점이 많은 것일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외국의 강호와 대결해 배우려는 하고, 슬럼프에 기죽지 않는 태도 등 그는 히딩크와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이 감독은 인터뷰 중간에 "선수때는 물론 지도자를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많이 의지한다"며 "어릴 때 어린왕자, 손자병법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아버지가 정한 가훈은 '누가 뭐라든 너의 길을 가라'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누가 뭐라든, 씩씩하게 한국 수영의 새 길을 열고 있다.
춘천=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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