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김경문 그리고 데이브 로버츠

2025-11-14

메이저리그와 너무 다른 KBO리그의 감독 평가

감독의 작전권은 옳고 그름 따지기 어려운 결정

비판은 언제든 가능…전체를 보는 안목 키워야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1. 김성근 감독과 첫 인연이 기억난다. 기자는 천방지축 신입, 김 감독은 만년 꼴찌 태평양의 3위 돌풍을 이끈 구세주 시절이었다. 아직 김 감독이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리기 전이지만,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현장엔 취재기자가 몇 명 없었다. 인천 지역 언론까지 꼽아도 한 손가락이면 충분했다. 마음만 먹으면 감독 숙소든, 사무실이든, 더그아웃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일 10시간씩도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절도 시절이지만, 상대가 김성근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사달이 났다. 야구가 좀 보이기 시작한 기자가 선을 넘었다. "그때 투수를 교체한 건 그렇지 않나요. 저 선수만 계속 쓰면 체력이 버텨낼까요." 뭐 이런 '가벼운' 질문이었을 거다. 그로부터 한동안 그와 독대를 못했다. 야구를 향한 열정만큼이나, 자신이 정한 원칙에 대해선 타협이라곤 없던 그였다.

이런 외고집은 나중에 그의 노년을 따뜻하게 만든 자신만의 독특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많은 이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어찌 됐든 다행인 것은 이 일을 겪고 난 뒤 기자는 비로소 김성근의 '히라가나 수첩' 끝자락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2.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현재. 프로야구의 박 터지는 인기만큼이나 사령탑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특히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친 한화 김경문 감독을 보면 안쓰러울 지경이다. 시절도 시절인지라, 팬들은 물론 잔디밥 좀 먹었다는 기자들까지 들고 일어나 김 감독과 그의 작전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타격 데이터 무시, 불펜 갈아 쓰기, 믿음 아닌 방치 야구, 혹사 숨기고 선수 욕만 먹이는 뻔뻔함, 인맥 앞세운 선수기용' 등 살벌한 문구가 등장한다. 무너진 마무리 김서현에 대한 무한 신뢰와 호투하던 라이언 와이스의 조기 교체 등을 놓고 경질을 주장하는 이들까지 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처럼 떠받들던 김 감독이 아니었나.

반면 LG 염경엽 감독은 시즌 중반 2위로 내려앉았을 때 비슷한 고초를 겪었지만, '승자 독식'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 그동안의 비판은 눈 녹듯 사라졌다.

#3. 앞의 두 예는 감독의 작전권에 대한 얘기다. 작전권이란 것은 참 묘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다. 투수 교체든, 대타 기용이든 결과가 나온 뒤에야 작전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전에 실패했다고, 나쁜 감독이란 등식은 맞는 말이 아니기도 하다.

눈을 돌려 미국 메이저리그를 살펴보자. 올해 감독상은 내셔널리그에선 밀워키 팻 머피, 아메리칸리그에선 클리블랜드 스티븐 보트가 수상했다. 두 감독 모두 사령탑 데뷔 시즌부터 2년 연속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특히 '그라운드의 철학자'로 불리는 머피 감독은 만장일치로 30장의 1위표를 휩쓸었다. 반면 월드시리즈 2연패에 빛나는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지난해 7위에 그쳤고, 올해는 1~3위표를 한 장도 얻지 못한 채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미국야구기자들이 최고 감독을 선정하는 기준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우승보다는 전력에 따른 성과에 주목한다. 밀워키는 시즌 초반 지구 2위에 머물렀지만, 7월부터 14연승을 질주하며 30개 구단 중 최고 승률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1위를 차지했다. 클리블랜드는 특급 마무리 투수 엠마누엘 클라세가 승부조작 혐의로 시즌 중 이탈하며 큰 혼란을 겪었지만, 디트로이트와 15.5경기 차를 뒤엎고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1위에 올랐다.

하지만 두 사령탑은 앞의 김경문 감독 예를 적용하면, '만고의 역적'이다. 밀워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다저스에 4전 전패로 물러났다. 클리블랜드는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시애틀에 밀려 조기 탈락했다.

#4. 김성근이든, 김경문이든 딱히 개인적으로 변호할 마음은 없다. 다만 정반대 스타일인 두 김 감독은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김성근은 수십년간 '선수 혹사' 비판을 주홍글씨처럼 달고 살았지만, 그 많은 팀을 전전하면서도 정작 '김성근의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감독 욕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혹사 당할' 기회를 줬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김경문은 누가 뭐래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9-10-10-10-9-8위를 한 팀을 올해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은 명장이다. 염경엽의 LG에 1승 4패로 맥없이 물러났지만, 한화는 올해 최고 인기 팀으로 급부상했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보면 딱 감독상 감이다.

염경엽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까놓고 보니 LG는 한화에 비해 너무 강했다. LG가 상대적으로 약한 게 있다면 코디 폰세와 와이스가 버티는 선발 원투펀치가 유일했다. 그나마 한화는 원투펀치를 삼성과 플레이오프 5차전 때 소진하고 올라왔다.

감독의 작전권은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 건강한 비판은 늘 있어왔고, 또 있어야 한다. 팬들의 목소리는 때로는 감정적이고 현장을 모르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것조차 팀을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피드백이 된다. 다만 너무 눈앞의 승리에만 매몰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우를 범하게 될지 모른다.

zangpab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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