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과 환율 안정 방안 논의"...서학개미 투자에 속수무책 원화값

2025-11-14

정부가 최근 가파른 원화 약세를 억제하기 위해 국민연금까지 활용한 시장 안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현 환율 흐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의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오전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외환·금융당국은 국민경제와 금융·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환율 상승 원인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국민연금과 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주체들과 긴밀히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 국민연금은 환율이 요동칠 때 ’소방수’ 역할을 해왔지만,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직접 언급한 건 이례적이다. 시장에서 ‘고강도 구두 개입’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이날 구 부총리는 “최근 거주자들의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470원을 넘어서며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 우려를 표했고, 구조적인 외환 수급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도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날 개장 직후만 해도 1470원대 중반까지 하락(환율은 상승)하며 4일 연속 장중 저점을 경신하던 달러당 원화값은 구 부총리의 발언이 공개된 직후 10원 넘게 오르며 강세로 돌아섰다. 이날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보다 10.7원 오른 1457.0원으로 마감했다(환율은 하락).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구 부총리가) 직접 환율 안정 방안을 실행하는 기관들을 언급하는, 상당히 강한 메시지를 줬다”며 “구두 개입 이후 증시에서 외국인의 거센 매도세가 이어졌음에도 달러당 원화값이 1450원대를 유지한 것을 보면 효과가 컸다”고 평가했다.

최근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원화 약세가 멈추지 않아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가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국내 거주자의 해외 증권 투자 규모는 998억5000만 달러다. 같은 기간 외국인의 국내 투자액 296억5000만 달러의 3배를 넘는다.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827억7000만 달러) 규모보다도 크다. 소위 들어오는 돈(수출 흑자)보다 나가는 돈(서학개미 투자금 등)이 훨씬 많다는 의미다.

한은도 최근 보고서에서 순대외자산 증가가 원화 약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국인의 해외 투자에서 외국인의 국내 투자를 뺀 순대외자산은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6월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순대외자산 비율은 55%에 달한다.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수출 기업들 사이에서도 원화 약세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환전 시점을 늦추는 움직임도 관찰되는데, 이 역시 추가 원화 약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동원한 환율 안정 방안으로는 국민연금에 해외 투자 자산 ‘환 헤지’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요청하면 외화 자산의 최대 15%까지 환 헤지를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원화가치가 더 내려가면 보유한 해외 자산의 일부를 선물환(특정일에 사전에 약정한 환율로 매수·매도하는 거래)을 통해 파는 방식이다.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 국민연금의 외화 자산은 지난 8월 말 기준 771조3000억원 규모다.

전문가들은 한은과 국민연금 간 외환 스와프(교환)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환율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본다.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를 위해 시장에서 달러를 사야 하는데, 외환보유액을 가진 한은과 직거래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줄게 된다. 현재 한은과 국민연금은 650억 달러 한도로 외환 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다. 계약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시장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대신 국내 주식에 더 투자하도록 ‘전술적자산배분(TAA)’ 활용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는 국민연금 본부 재량으로 자산별 목표 비중을 추가로 2%포인트 이내에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제도다. TAA를 활용하면 국내 주식 매수 허용 범위는 19.9%까지 높아지고 30조원 규모의 주식을 추가로 사들일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국민연금과 어떤 방안을 논의할지는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당국에서는 외환시장 변동성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훈 수석연구위원은 “대외적으로 미국이 ‘매파’(금리 상승 선호)로 돌아선 데다, 엔화 약세 등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어 한동안 원화값은 1400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국민연금이 환 헤지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실행한다면 원화값의 하락 폭은 일부 제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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