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선수'서 '명장'으로…염경엽의 역전 리더십 [북스&]

2025-11-14

모든 감독이 스타 선수 출신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공한 감독들 중에는 선수 시절엔 평범했지만 지도자로서 대성한 이들이 많다. LG 트윈스를 29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고, 올해 2년 만에 다시 챔피언 자리에 앉힌 염경엽 감독도 그중 하나다. 그는 스스로를 중간도 못가는 “엉터리 선수였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야구 인생 2막을 펼치며 새로운 ‘커리어 하이’를 써내려가고 있다. 염 감독이 자신의 야구 인생과 리더십 철학을 담은 책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를 펴냈다.

책은 2023년 우승 이후 염 감독에게 출간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염 감독은 틈틈이 구술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집필을 이어왔고, 올해 또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직후 ‘적시에’ 세상에 나왔다.

성공한 감독들의 자서전은 여럿 있지만 염 감독의 이야기는 한층 특별하다. 형편없던 선수에서 프런트 직원, 스카우터, 운영팀장, 단장, 그리고 우승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짜릿한 역전 경기와 같다. 인생의 바닥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초라한 선수 경력을 지닌 초보 감독이 어떻게 성공적인 리더로 성장했는지를 과정과 철학으로 풀어냈다.

젊은 시절의 재능은 오히려 독이었다. 대학 졸업 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으로 뛰며 신인왕 후보에 올랐고 팬클럽까지 생겼다. 작은 성공에 취해 그는 훈련보다 유흥에 빠졌고 노력 없는 재능의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타율 1할대를 기록하며 대수비 요원으로 밀려났고 팀이 우승하던 날 축하연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야구를 포기하려던 그는 이민과 카페 창업까지 고민했지만 “그라운드에서 넘어진 이상 그라운드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정장을 입고 구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프런트 업무를 시작한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선수로서는 실패했지만 제2의 야구 인생에서는 반드시 승부를 보겠다고. 생각이 바뀌자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지독한 노력과 공부를 통해 ‘작은 일이라도 염경엽이 하면 다르다’는 말을 듣겠다는 목표로 한 걸음씩 올라섰다. 신생 팀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팀을 준우승까지 끌어올렸고, SK와이번스 단장으로 우승을 거뒀다. 마침내 감독으로서 LG 트윈스의 왕조 시대를 열고 있다.

책에는 염 감독이 연구와 기록, 시행착오를 통해 쌓아 올린 리더십 노하우가 가득하다. 그는 꾸준히 리더십 강의를 듣고 이를 야구 현장에 접목했다. 그렇게 깨달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향식 리더십’이다. 리더는 위에서 명령만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옆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염 감독은 “팀의 발전을 위해 상사를 설득하고 생각을 바꾸는 ‘상향식 리더십’이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구단이 꺼리던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을 위해 직접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으로 구본준 구단주를 설득했고, 그 결과 영입된 선수들이 팀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다.

그는 또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섬세한 소통 능력’이라고 말한다. 선수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라커룸에서 조용히 한마디를 건네기도 하고, 불펜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하거나 언론을 활용해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 염 감독은 메모와 매뉴얼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 감독으로 부임하자 158쪽짜리 매뉴얼을 배포했다. 운영 철학, 훈련 방향, 작전, 루틴, 팀 플레이까지 빼곡하게 정리해서 모든 스태프가 숙지하도록 했다. 그는 자신만의 리더십 노트도 정리해 두고 휴일마다 펼쳐 읽으며 업데이트한다. 매뉴얼을 강조하는 이유는 경험과 지식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다. 자신만의 매뉴얼이나 노트는 피나는 성장의 기록이자 미래의 나침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선수들이 실패를 두려워할 때 돌파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리더의 몫이다. 일례가 ‘달리는 야구’ 전략이다. 염 감독은 도루 실패를 평가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누구든 기회가 오면 뛰라”고 독려했다. 그는 “도루 시도 자체가 실패를 감수하고 승부를 거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강팀과 약팀은 한 점 차 승부에서 갈린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싸우는 팀, 이기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평범하고, 계획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것이 염 감독의 지론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와 정확한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선수들에게 명확한 목표와 계획을 갖고 한 단계씩 밟아 나가라고 조언한다. ‘메이저리거 강정호’가 아니라 ‘프로 1년차, 2년차의 강정호’를 그려보고 이를 위해 노력하라는 식이다.

목표도, 계획도, 노력도 없이 살다가 야구 인생의 바닥에서 수치와 좌절을 겪었지만 생각을 바꿔 치열한 노력 끝에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리더가 됐다. ‘야구 모르고 인생 모른다’는 말이 있다. 염경엽 감독이 살아 있는 증거다. 1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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